2022년 10월 16일 (다해) 연중 제29주일:생명의 말씀:하느님과의 낯선 만남
"우리의 비극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이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의 축적이 한 나라가 겪는 전쟁의 고통과 슬픔을 그저 짧은 외신
뉴스로 만듭니다.
전쟁으로 인한 여파가 불편할 뿐 어느새 익숙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상을 뒤흔드는 고통과 슬픔이 개인을 넘어 보편적으로 확장되고, 그 보편성에 내가
포함되지 않으면 그저 안타까움으로만 표현되고, 거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인간 삶에 대한
어설픈 관조적 태도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보편적인 고통은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지고 익숙해져 갑니다.
공정과 평등이라는 원리가 앞세운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개인은 타인의
고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이웃의 아픔에 점점 무뎌집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예의범절로 이해되는 시대가 되어
갑니다.
'무관심의 세계화'.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고부터 끊임없이 교회와 세상을 향해 호소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예언자적 외침입니다.
집과 나라를 떠나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무심함, 기후 위기로 위협당하는 생태 환경에
대한 외면,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별로 받아들여지는 경제적 불평등이 모두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경쟁과 차별을 사회적 삶의 전제로 받아들이고 강제되는 현실에서 교황님의 호소는
나날이 작아집니다.
발언의 기회마다 건네는 말씀으로 익숙하게만 들립니다.
그리고 익숙함은 시간과 함께 무관심으로 이어집니다.
무관심에 익숙해져 갑니다.
하지만 익숙함을 낯설어해야 합니다.
교황님의 예언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익숙한 무관심을 낯설게 대해야 합니다.
'낯설게 하기'.
예술은 낯익은 사물을 낯설게 만들어 무뎌진 감각을 되살리는 도구로, 예술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이 아닌 다시 활성화되는 인간의 감각이라고 빅토르 시클롭스키
(Viktor Borisovich Shklovskii)는 말합니다.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통해 스쳐 지나친 사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의미를 알아듣습니다.
사실상 비일상적인 문장, 언어, 색채, 소리, 몸짓 등으로 표현되는 예술을 접할 때면
일상에서와는 다른 감성이 채워집니다.
예술로 비롯되는 '낯설어지기'는 하느님과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는 나의 삶을, 우리의 일상을, 세상살이를 낯설게
이끕니다.
그저 그런 삶,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 돌고 도는 보편적 세상살이의 익숙함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익숙해진 나의 시각, 관념, 체험, 상황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게 만들어 줍니다.
익숙한 나의 시선이 아닌 낯선 하느님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낯설어짐으로써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태와 만남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낯선 시선을 배웁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뜻으로 예수님은 오늘 쉬운 비유로 말씀하시는데(루카 18,1) …
객쩍은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김한수 토마스 신부 | 화요일아침 예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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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
새 아침,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하십니다.
사무엘 예언자의 어머니 한나,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그리고 성녀 모니카의 기도와 믿음은 우리의 표상이 됩니다.
그들의 끊임없는 기도는 결국 하느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간절함이 있습니다.
간절함을 주님께 아룁시다.
낙심하지 말고.
-사진 설명:여수:홍덕희 아녜스 | 가톨릭사진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