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나를 보고 싶어 하실까?
기도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보고 싶어 하실까?'
어차피 기도하기 위해선 머물던 방에서 나와 경당으로 가야 했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상상에 기분이 안 좋을 수
없었지요.
제가 뭐라도 된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기도 후 산책을 하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하느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그렇다면 날 보고 싶어 하신다는 표현이
적절한 건가?'
'그치, 내가 기도할 때는 하느님 아버지를 온전히 만나는 거니까 그분께선 기도하러 오는
나를 보고 싶어 하실 거야.'
이 같은 질문과 대답으로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마음 한쪽 구석에 찜찜함은 계속
남았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큰 제 성향상 기도하러 오는 나를 하느님께서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게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치 "매일 빼먹지 말고 기도하러 와. 내가 널 보고 싶어 하니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세상 최고, 최상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그게 좋기만 한 게 아니라서 다시 가라앉았습니다.
바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게 공존하는 상태, 양가감정인 거죠.
그런데 솔직히 제 안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게 제 안의 무얼 건드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어릴 때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두 분의 얼굴을 동시에
봐야 하는 경우는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은 아버지가 아끼시던 뉴욕 양키스 선수단의 친필 사인볼 때문에
혼난 일입니다.
형이랑 함께 갖고 놀았는데, 그만 흠집을 내고 말았습니다.
퇴근하신 아버지는 먼저 형을 불러 안방에서 야단치셨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저에게 그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마루 한쪽에 있던 어머니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진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그렇게 많이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다.
거의 없는 분들도 많죠.
하지만 누구나 그 내면엔 무의식과 그 느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도 기도 중에 떠오른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오랜 시간 묻혀있던 부모님과의 관계가
하느님 아버지와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모든 상황이 느낌으로 남는 건 아니지만, 문득 떠오르는 잡념이 그 느낌과
연결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무의식적 기억들이 현재 자신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건
필요한 일입니다.
이를 통해 부정적인 일이 있을 때 그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우석 스테파노 신부 | 얘기 들어주는 신부 (의정부 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