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9일(다해) 연중 제28주일:생명의 말씀:사라진 후에 알게 되는 것들
외국에서 활동하시던 저희 아버지께서는 한국에 들어오시면 인사동에 가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김없이 인사동을 다녀오신 저희 아버지께서는 서예가가 직접 쓴 두루마리
하나를 사 들고 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왜 이런 쓸데없는 걸 사 왔냐며 핀잔을 주셨습니다.
셈이 밝으신 저희 어머니에게는 그 작품이 쓸모 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버지께서는 다시 외국으로 나가셨고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저는 벽에 걸려있는 두루마리 글귀 아래에서 슬피 우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선물하신 두루마리에는, "부르면 언제나 가슴 뛰는 당신"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지요.
곁에 있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자취를 선명하게 느끼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곤 하지요.
우리는 그제야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흘려보냈음에 후회하며 지난 사랑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당시의 나병은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이 피부병은 하느님께 받는 벌이라 여겨졌으므로 환자들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었고 격리된 삶을 살아야만 했답니다.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제들을 찾아가 병의 완치
여부를 검사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몸이 깨끗해지는 기적을 보여주신 순간 나병환자들은 더없이
기뻤겠지요.
서로 부둥켜안으며 그동안의 설움을 털어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것은 이방인인 사마리아인뿐이네요.
저는 다른 이들 역시 예수님께 마음으로는 감사를 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웃들에게 자신들의 상태를 먼저 보이고 싶었을 것이고 잔치라도 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은 잊혀 갑니다.
행복한 상황에 취해 감사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금방 하느님의 사랑을
잊어버리는 우리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청원은 감사 기도를 통해 완전히 종료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지요.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돌아와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인에게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사랑이란 어디서나 존재하며 우리의 곁에 보란 듯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 사랑을 받았던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깨닫고 안타까워하며 후회하지요.
그러니 새로운 한 주, 우리 곁에 있는 주님의 소중한 사랑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주님의 사랑을.
-방종우야고보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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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17,17)
치유된 열 사람 중 감사를 드리러 온 유일한 한 사람. 베풂에 감사할 줄 알았던
한 사람은 자신의 믿음으로 육신의 치유는 물론 영혼의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은총을 받아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삶이 은총을 불러들인 결과입니다.
부끄럽지만 어리석은 아홉 사람 중 하나였음을 고백합니다.
늦었지만, 제게 주신 수없이 많은 은총에 겸손되이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 설명:카르멘대성당, 파나마시티:장은미 베르나디아 | 가톨릭사진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