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아람 장군 나아만 (2)
지난 주에는 아람 장군 나아만이 요르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근 뒤 나병을 치유받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의 은총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해줍니다(루카 4,27 등).
주님의 은총이 그분의 가르침과 더불어 세상 만민에게 전파되리라는 예고지요.
나아만은 병에서 해방된 뒤 엘리사를 만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만 제물을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2열왕 5,17).
그러면서 흙을 두 가마니 달라고 청합니다.
언뜻 이상해 보이는 요청이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만'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1사무 26,19; 시편 137,4 등).
이방인의 땅은 우상숭배로 부정해진 곳인 데다(아모 7,17; 호세 9,3-5), 당시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에 따라 다스리는 주신(主神)이 다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압은 크모스 신(민수 21, 29), 암몬은 밀콤 신(예레 49,1), 바빌론은 마르둑 신이 다스린다고
믿은 식입니다.
그래서 나아만도 아람에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선 이스라엘의 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상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나아만은 2열왕 5,1에서 "나병 환자"로 나오는데, 격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아람 임금이 아끼던 장군이라 궁전 출입도 가능했을 터입니다.
여기서 나아만의 병이 우리가 아는 한센 병과는 다른 종류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말 성경에 "나병"으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짜라앗]인데, 이는 건선과 백반을
비롯하여 악성 피부병을 통칭하던 용어입니다.
옷이나 건물에 피는 곰팡이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신체의 일부가 문드러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한센 병은 구약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구약 시대의 인골 어디에서도 한센 병의 흔적이 발견된 예가 없고요.
한센 병은 기원전 200년경 처음 등장한 걸로 추정되며, 신약 시대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걸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를 종합하면, 나아만은 한센 병 환자가 아니라 단순히 악성 피부병을 앓던 환자인
셈입니다.
나아만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엘리사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아람 임금이 림몬 신전으로 갈 때 자기에게 의지하므로 본인도 예배하러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2열왕 5,18).
그때 엘리사는 '안 됩니다!' 하지 않고 오히려 "안심하고 가십시오."(19절)라고 말하여
마음의 부담을 덜어줍니다.
그는 자신이 지키는 신앙의 관습이나 신념을 타인에게 무조건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어떤 종교인들은 제사 음식을 만들거나 제사상에 절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만,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한 대답은 종교 갈등으로 가정이나
나라에 불화가 생겨 해체되는 걸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해줍니다.
-김명숙 소피아 ( 의정부 교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