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끝말잇기처럼 이어지는 믿음

2022. 10. 20. 오전 5: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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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끝말잇기처럼 이어지는 믿음



요즘 누군가의 글을 읽고 있다. 

오래전 돌아가셨고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데도 마치 나에게 보내는 글처럼 친밀함을 

느낀다. 

글 속에 매일 아침 주님께 식별의 은총을 청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아침마다 기도하라고 했다면 잔소리처럼 느껴졌을 텐데 글을 읽고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당신은 지금 하느님 나라에 계시겠지요. 날 위해 같이 기도해주세요. 

나에게 성령을 보내달라고 예수님께 청해주세요." 

마음속으로 되뇌자 든든해졌다. 

하느님 나라에 날 아는 사람이 한 분 더 늘어난 기분이다. 


글에 소개된 책을 사기도 했다. 

아베 피에르가 지은 『단순한 기쁨』인데, 재고가 없어서 온라인 중고서점을 뒤져 찾아냈다. 

피에르 신부가 절망에 빠진 젊은이에게 삶의 기쁨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지만, 피에르 신부는 '타인과 단절된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날 위한 글임을 알았다. 

타인 없이 나 혼자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함께 행복할 것인가. 

삶의 매 순간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다정하게 일러주었던 것이다. 


박물관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박물관을 자주 가게 되는데, 시설이 쾌적한데다 무료고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삶의 흔적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연결감에서 오는 위안이다. 박물관에 있으면 내가 유구한 역사의 한 부분으로 속해있음을 

실감한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순교자의 무덤'이란 작품을 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순교자들의 얼굴 그림 앞에 하얀 사발 80개가 가지런히 놓인 작품이었다. 

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라는 게 발각되면 옆집에 사는 이웃까지 잡아가던 제도 때문에, 

순교해도 이웃의 눈총이 무서워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썼던 사발에 이름을 

써서 땅에 묻었다고 한다. 

낡은 사발이 곧 무덤이고 비석인 셈이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안심할 수 있었다. 

정방형으로 도열한 사발 모양이 마치 촘촘한 그물망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이 그물 덕분에 살겠구나. 

내가 진리의 빛에서 멀어질 때도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게 받쳐주는 안전망이구나. 

이백여 년 전의 순교자들이 나와 결코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래전에 쓰인 책이나 박물관의 유물 같이, 이전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을 마주할 때면 

내 안의 어딘가가 슬그머니 열리는 기분이다. 

열린 틈 사이로 우리를 둘러싼 긴 시간의 역사가 들어온다. 

그 문은 걸핏하면 닫히기 십상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믿는 이의 유산을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면, 다시금 그 문을 찾아 

열어야 한다. 

단절을 연속으로 바꾸고 싶을 때, 사랑과 믿음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고 싶을 때, 세상을 

떠난 이들의 글을 읽고 전시관의 유물 앞에 선다. 

마치 끝말잇기를 하는 것처럼, 언젠가 내가 남긴 삶의 흔적이 다른 누군가의 문을 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신후 블라시아-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작가이자 세 아이의 엄마. 

홍보국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강좌 <함께 쓰는 기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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