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2021. 10. 18. 오전 5:34:48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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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오늘 전례

전승에 따르면, 루카 복음사가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는 터키의 안타키아)
출신이다.
바오로 사도의 전교 여행에 함께하였던 그는 주님의 복음과 복음의 선포 상황을
기록하였다.
곧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이다.
루카는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부분을
성모 마리아와 함께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성모 마리아를 최초로 그린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전승이 있는데,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들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당송:이사 52,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다들 떠나고 루카만 함께 있다며 마르코를 데리고
오라고 한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신다(복음).


감사송:<사도 감사송 2 : 교회의 기초이며 증거자인 사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도들을 기초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어
지상에서 주님의 거룩하고 영원한 표지가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와 영원히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성 루카 복음사가를 "사랑하는 의사"(콜로 4,14)라고 부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복음사가는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서
감옥살이할 때, 사도의 첫 변론에서 그의 곁을 지킨 협력자입니다.
복음사가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와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 안티오키아에서
개종한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추측됩니다.
그의 지성과 글 재능은 성령의 인도로 복음의 신비를 이방인에게 알리는
도구로 꽃을 피웁니다.
복음사가는 가난한 이들, 여인들, 어린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며,
이방인들을 구원의 교회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시야를 열어 줍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일흔두 제자가 모든 고을로 파견되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온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일꾼들은 언제나 모자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업을 함께할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을 선포할 일꾼들을 언제나 부르십니다.
많은 위험과 난관이 있어도 주님의 복음은 선교사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선포되어야 합니다.

복음사가는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 모습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하여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제성소와
수도 성소가 늘어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정 안에서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며 이웃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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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카(luke) 복음사가


축일 10월 18일 
신분 복음사가, 증거자 
활동연도 +1세기

신약성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3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하여
그리스도의 생활과 초기 교회 생활을 나란히 보여준 루가는, 사도 바오로께서
"사랑하는 의사"(골로 4,14), 전교사업의 "동료"(필레 1,24), 바오로가 순교하기 전
"유일한 동반자"(2디모 4,11)라고 부를 만큼 사랑받는 제자였다.

루가는 복음사가 중에서 유일한 이방인 출신이다.
그의 고향은 교육의 중심지인 시리아국 안티오키아였다.
그리스도 강생 후 40년경 안티오키아에는 신자 단체가 형성되었으니
그는 그중의 열심한 한 청년이었다.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에서 전교를 하였을 때 그들을 알게 되고
특히 바오로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것이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 드로아에서 의사로 살아가려 하였으나 주님께서는 복음
전파라는 더 큰 사명을 그에게 주셨다.
흔히 그를 예수의 72제자(루가 10,1) 중 한 사람이거나, 엠마오로 가는 길의
글레오파의 동행자이거나(루가 24,18) 혹은
사도 필립보에게 "선생님 예수를 뵙게 해주십시오"(요한 12,21) 하고 간청한
저 이방인의 한 사람이라고도 하나 신빙성 있는 근거는 없다.
루가 자신이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 (루가 1,2)과
자기를 뚜렷하게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비의 복음, 보편적 구원의 복음,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
절대적 재생의 복음, 기도와 성령의 복음, 기쁨의 복음을 썼으며, 특히 착한
사마리아 사람(10,30), 잃었던 양 한 마리(15,7), 자캐오(19,5),
잃었던 아들(15,11-32) 등의 얘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증거한다.
또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읍니다"(루가 23,34)라고
하시며 박해자까지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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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루가를 통하여 성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며 성모송 이외
매일 성무일도에서 외는 마리아의 노래, 즈가리야의 노래, 시므온의 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성모님에 관한 그의 기술은 성모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루가가 복음서를 쓰기 위해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을 만났다면 성모님을 빼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루가는 의사일 뿐 아니라 화가였으며 성모님에 대한
초상화를 처음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는 초대 신자들간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도 한다.
성 바오로가 고린토인에게 보낸 서간 중에 “우리는 디도와 함께 한 사람을
딸려 보냅니다.
그 사람은 모든 교회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
(2고린 8,18)라고 한 것은 그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의 겸손은 자신이 기술한 사도행전에서 자신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음에서 드러나며, 다만 우리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도 선교 사업에
일익을 담당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각 성서 저자의 상징이 마태오는 천사, 마르코는 사자, 요한은 독수리이며
루가는 희생을 표시하는 소로 묘사되고 있는 바(에제 10,14; 묵시 4,7)
이는 침착하고 강인한 그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의 복음이 성전에서
시작하여 성전으로 끝나는 데도 이유가 있다고 한다.
스떼파노가 순교한 후 그의 고향 안티오키아에서 믿음을 얻은(사도 11,20)
루가는,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두번째 전도 여행을 할 때, 드로아스에서
그를 만나 일행이 되어 마케도니아의 필립비까지 행동을 함께 하였다
(사도 16,10.12).

그리고 바오로는 이곳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는 곧 떠나게 되었는데,
평신도인 루가에게 교회를 돌보도록 맡긴 것 같다.
이어서 세번째 전도 여행 때 바오로는 필립비를 거쳐 갔는데 루가는 여기서
다시 그 일행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갔고 이어서 가이사리아, 마지막으로
로마까지 따라갔다.
바오로가 로마에서 처음 감금되었을 때 루가는 그와 함께 있었고
(골로 4,14; 필레 1,24), 다시 로마에서 감금되었을 때에도 바오로 옆에서
협력자로 그를 섬긴 단 한 사람이 루가였는데
"루가만이 나와 함께 있읍니다"(2디모 4,11)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같이 복음사가 루가는 참으로 사도 바오로의 충실한 제자요 협력자로서
그의 순교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루가는 66년 바오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그리스로 건너가 아카이아
지방에 전교하고, 다음은 소아시아 지방에 가서 주를 위해 수많은 간난
신고를 기꺼이 참아 받았다.
루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충실히 주를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아카이아(비타니아 혹은 에집트)에서 별세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으며,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축일은 10월 18일.

복음사가 루가는 온 일생을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는 아카이아(achaia)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전교하며 온갖 고난을
참아내며 주님을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화가와 의사의 수호성인이다. 4복음서를 동물로 상징할 때
루카 복음서는 소로 표현된다.
이는 루카 복음사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격과 주님을 위한 그의 희생을
상징한다.


-경향잡지, 1988년 10월호, 배문한 도미니꼬(수원 가톨릭 대학 교수 · 신부)-


[1] 우리가, 아니, 내가,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 맨 처음 입에서 나올 말은
무엇일까?
상상이 아니라, 성서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그분께 달려든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자면,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가 될 것 같다.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가 17,13).
나병환자들이 당시의 율법에 따라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큰 소리로 예수께 외친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먼저 그들에게서 배운 이 말로부터
시작한다.
바오로 사도와 함께 우리 모두는 자신을 돌아볼 때 거기에서 부족과 약점만
찾아낼 수 있을 뿐이고, 무언가 그럴듯한 것이 혹시 거기 있다면, 그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권능이 나에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게"(2고린 12,9) 된다.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로마 8,3) 쉽게 죄에 떨어지게 된 뒤부터
하느님의 사랑은 자비가 되었고, 그분의 마음은 우리를 측은히 여기는
심정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태양보다 더 거센 사랑의 불길로 타오르는 하느님의 마음속에서
인간의 모든 죄악은 흔적도 없이 정화된다.
"제가 이 세상의 모든 흉악한 죄를 다 지었다 해도 하느님께 대한
저의 신뢰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비하면 제가 지었다는 그 모든
죄악을 다 모아도 그것은 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임을 저는 잘 아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소화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부터 이미 영원한 생명 속에 들어가 산 사람이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죽음을 바로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드리신 기도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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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비 유다인 곧 이방인
출신이었던 루가가 깨달은 하느님도 바로 그런 분이셨다.

그래서 그는 이 놀라운 소식을 온 인류에게 전할 사명을 의식하고 복음을
썼다.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
에 관해서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것"(루가 1, 2-3 참조)을 자료로
했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요리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마음속 깊이에 간직하고 근본 진리로 삼았던 것은
하느님의 자비였다.
그가 기록한 복음서는 이 점에서 다른 공관복음서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제자였던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 자비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은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는"(요나 4,2) 분이었다.

복음서에 이어 사도행전까지 기록한 그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이란 하느님의 이 측은지심, 그분의 무한한 자비 바로 그것이었다.
이 무한한 자비는 말 그대로 어떤 한계나 경계선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 경계선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 놓여있던 담이었다.

루가가 깨달은 하느님의 이 끝없는 자비는 그 옛날 요나가 혹독하게 경을
치르고 나서 겨우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잔인하게 억누르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는 요나의
눈에 저주를 받아 당장 망해버려야 할 땅이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거기로 가서 현지인들에게 큰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정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태풍을 만나고 고래 뱃속 깜깜한 굴속에서 삼 일 동안이나 숨막혀
죽을 듯한 체험을 하면서, 그야말로 옛 관념에 죽었다가 새로운 깨달음 속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는 하느님 자비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 하느냐?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요나 4,10-11)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에 아무 한 일이 없었던 것만큼이나, 니느웨 사람들이
나서 자라는 데에도 아무 한 일이 없는 요나에게는 그들이 다만 철천지원수요
저주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창조주 하느님께는 그들을 포함해서 어떤 나라
사람이든지 모두 당신이 친히 지어내신 작품, 당신이 아끼지 않을 수 없는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에페 2,14-16).

이런 바오로의 가르침이 루가에게 그대로 전해졌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쁜 소식은 이스라엘의 경계 안에 가두어 둘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소식이었고,
인간의 상식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참된 의미의 혁명을 가지고 와야
할 것이었다.

[3] 그런데 자기네만 선민이요 하느님 백성이라고 굳게 믿어온 유다인들에게
그것은, 고래 뱃속에 들어가기 전의 요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대가 아무리 크고 저항이 심해도 산이라도 옮길 듯이 굳건한
바오로의 깨달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심오한 계획을 나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
그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에페 3,3-6 참조) 하는
바오로의 확신은 루가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래서 복음은 비로소 유다의 경계를 벗어나 온 세계 전 인류를 위한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었다.

루가가 쓴 복음에서 '자비' 혹은 '측은지심'은 하느님이라는 나무의 줄기를
표현하는 말이고, 거기에는 여러 잔가지와 잎이 붙어 있다.
'은총', '호의', '선하심', 한 번 맺은 계약은 비록 상대방이 깨뜨리는 일이
있어도 이쪽에서는 끝까지 지키는 '충실' 등,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동사들이
그것들이다.
이 말들은 모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지만, 그 관계는 친구
사이처럼 평등한 것이 아니라, 왕과 노예 사이의 관계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한 쪽으로 거의 무한히 기울어진 것이다.

아내가 자신을 떠나 외간 남자와 놀아나는데도 끝까지 충실했던
호세아 예언자는 그런 관계를 조금이나마 몸으로 체험하였다.
또 엄마와 갓난아기 사이도 그 관계를 희미하게나마 보여준다.
실제로 하느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말 가운데 하나인 히브리어 '라함'은
'엄마의 가슴'에서 유래한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가냘픈 젖먹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 자기 몸의 일부였다가 세상에 나와 자기 몸에서 나오는 젖으로 먹여주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생명이 병들어 꺼져갈 때 느끼는 단장의 아픔,
아기를 향해 온몸과 마음으로 쏠리는 관심과 사랑, 한 마디로 <모성애>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 자비의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이사 49,15).

[4] 예수께서는 어머니가 아기를 다루듯 사람들을 깊은 애정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셨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제일 잊혀지고 무시당하는 이들, 보통 사람들이 멀찍이
세워두고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이들을 찾아 그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셨고,
그들을 만지셨으며, 그들 쪽에서도 당신을 만지도록 내버려두셨다.
나병환자를 만지면 레위기(13-14장)에 나와 있는 율법에 따라 부정을 타게
된다는 점을 잘 아시면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그 썩어가는 몸을 손으로
만지셨다.
온 동네에 잘 알려진 죄녀가 와서 당신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입맞추고
머리털로 닦고 할 때, 그 모든 행위를 전혀 막지 않고 그대로 두셨다(7,37-38).
하혈병에 걸려 부정한 몸이었던 여인이 당신을 만졌을 때에도(8,44-47)
그대로 두셨으며, 비유까지 추가한다면, 반쯤 죽은 사람에게도
아무 거리낌 없이 손을 대신다(10,34).
그분이 손을 대시면 병은 치유되고 사람은 일어났다.
그분의 자비는 어떤 거리도 뛰어넘어 손이 닿는 거리로 좁혔다.
루가복음은 공관복음에서 공통되는 부분보다 자기 고유 부분이 반을 넘을
정도로 개성이 강한 복음이다.
이 고유부분에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끈질긴 기도, 자기만족과 욕심에
대한 경고, 겸손한 자세로 돌아갈 것, 고통에 짓눌린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죄인들을 받아들일 것 등이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인 동네의 과부(7,11-17),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의 집에 들어온 죄녀(7,36-50),
강도의 칼에 찔려 길가에서 신음하고 있다가 사마리아 사람에게 구조를 받은
여행자(10,29-37), 친구의 청을 끝내는 들어주고 마는 사람(11,5-8),
당신 어머니를 칭송하는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11,27-28), 어리석은 부자
(12,16-21), 십팔 년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13,10-16), 여우같은 헤로데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13,31-33),
수종병자(14,1-6), 불쌍한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라는 말씀(14,7-14),
할 일을 다 하고도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는 가르침(17,7-10),
나병환자 열 사람(17,11-19), 억울한 일을 당해 공정한 재판을 호소하는
과부(18,1-8),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세리가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돌아간 이야기(18,9-14), 잃었던 것을 되찾은 사람의 기쁨
(15,1-32), 부자와 거지 라자로(16,19-31), 자캐오(19,1-10), 당신께서
떠나시고 난 다음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성령을 보내주실 때까지
잠시 동안 제자들이 아무 의지할 것 없는 처지가 될 것을 내다보시며
그들의 그런 처지를 미리 알려주시는 표현의 하나로, 이제는 칼과 돈주머니를
가져가라는 지시(22,35-38),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를 따라 간 백성과
가슴을 치던 여인들(23,27-31),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이야기(24,13-35),
우도(23,39-43). 이 모든 이야기는 루가만이 전해준다.

[5] 이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그리고 잘못된 권력자들로부터는 단호한 태도로
그들을 지키는(헤로데에 대한 태도) 주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이리 떼와 싸우며 양 떼를 돌보는 목자, 자식을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쓰는 부모, 특히 목숨 바쳐 갓난아기를 지키는 엄마의
모습을 닮았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 그분의 모성애를 보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여기에 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생각하면 어떤 인간도
실망할 수가 없다.

이 이야기들 가운데 우선 하나만이라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먼저 외우고 온 존재에 스며들 때까지 계속 자기에게 들려주자.
그러면 우리는 거기에서 반드시 새로운 빛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하여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하신
주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바로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이다.
마리아는 그 모든 사람들의 표상이다.
루가만이 전하는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마리아가 보여준 태도를 아주 뜻 깊은 표현으로 전한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루가 2,19; 2,51 참조).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면,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가난한 사람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신앙인의 전형이다.
그분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건으로 전해오거나 성서 말씀으로
전해오거나 간에 하느님 말씀이 전해오면 늘 같은 태도로 그것을 받아들여
오래 간직함으로써, 그것을 안에서 소화하고 당신 것으로 만드셨던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소화시켜 힘으로 바꿈으로써 살아가는 것처럼.

오늘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 들불처럼 퍼지고 사람들이
거기에서 새로운 빛과 힘을 얻는 것은, 모르는 사이에라도, 마리아의
이런 모습을 본받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에게는 교육을 시키지 않던 당시의 관습으로 보아 마리아께서는 글자도
모르셨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도 그분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소화시키는 일에서 우리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되시는 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성서를 하느님 말씀으로 대하고, 그분처럼 한 대목이라도 깊이
새기고 오래 간직하면, 성령의 힘으로 그 참 뜻을 깨닫고 지금 나의 삶에
그것이 주는 빛과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누구나 마리아처럼 복된 사람이 된다.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고 소리치는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간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가 11,27-28).

-쌍백합, 제27호, 2009년 겨울호,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천주교 전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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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는 마태오, 마르코, 요한과 더불어 신약성서의 4대 복음 저자 중의
한 사람이다.
루카는 그리스도와 동시대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으며,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바오로 성인의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사랑하는 의사 루카와 테마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라는 구절이 있고,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에도
"나의 협력자인 마르코와 아리스다르코스와 테마스와 루카가 그대에게
인사합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루카가 바오로의 제자이자 협력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루카복음의 특징은 다른 곳에서는 다루지 않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와, 아기예수의 잉태부터 어린 시절의 일화를 비교적 소상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께 아기의 수태를 예언하는 '성모영보',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목동' 등은
루카복음만이 전하는 일화들로서 이후 성화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성 루카가 이처럼 상세하게 그리스도와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관해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생전에 성모 마리아를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한 화가였던 루카가 성모님의 모습을 직접 그린 작품이 15세기 말까지
콘스탄티노플에 남아 있었는데 후에 파손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이로 인해 성 루카는 의사뿐만이 아니라 화가로도 여겨지게 되었다.

15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로제 반 데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의 작품
중에 루카를 화가로 그린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서 성모님은 아기예수에게 젖을 물리려 가슴을 내놓고 있는
아기 엄마로, 루카는 그런 마리아를 스케치하고 있는 화가로 그려졌다.
성 루카는 로마시대 귀족들이 입었던 붉은색 토가를 입고 있고, 머리에는
화가가 흔히 쓸법한 빵모자를 쓰고 있다.
성 루카를 토가를 입고 있는 화가로 그린 것은 성 루카에 대한 존엄성의
표현이자 동시에 화가를 단순한 장인으로 보지 않고 사회의 지도층으로
보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이 그림을 그린 바이덴은 대단한 부와 명성을 쌓았다고 하니
성 루카는 화가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화가의 모델이 된 성모님은 이전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다정한 어머니이자 당대의 귀부인으로 변신했다.
그녀는 비단실로 수를 놓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으며, 뒤쪽의 황금빛
비단천은 그녀를 한층 더 귀한 분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다.
그림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사진 이상 정교한 묘사에 혀를 내두르게 되며,
이 모든 것을 꼼꼼히 그려낸 화가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기!'. 이것은 15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의
모토였다.
플랑드르란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으로 이탈리아와 함께 회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으며 렘브란트, 루벤스, 베르메르를 비롯하여 많은
대가를 배출한 곳이다.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플랑드르 화가의 정교한 그림 그리기는 이후
이탈리아에도 널리 유행하게 되며 이른바 플랑드르 화풍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 작품의 작가 바이덴은 플랑드르가 탄생시킨 당대 최고의 대가였다.


-가톨릭신문, 2009년 5월 17일,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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