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아, 모든 처지에 만족하라

2021. 10. 15. 오전 5: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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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아, 모든 처지에 만족하라


고통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숨은 십자가 생활을 본받음으로 그분과
닮아가는 것에 대하여 내 영혼아, 모든 처지에 만족하라.
네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너는 더 이상의 것을 원할 수가 없다.

네가 기도 중에 어떤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정신적인 건조 중에 있다면
그 고통을 견디어내고 만족하도록 노력하라.
왜냐하면 고통받는 것은 관상보다도, 셋째 하늘까지 황홀하게 붙들려 올라가는
일보다도 더 좋은 일이다.
아프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모든 교제가 끊긴다면 그 고통을 견디어내고
만족하여라!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영적 수련 중에 감미로움을 맛보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이다.

너의 내외적 고통 때문에 이웃에게 봉사하기가 어려워지거든 너의 고통을
잘 참아받고 만족하라.
고통받는 것이 활동보다 더 낫다.
너의 기도 중에, 경건한 사무 중에 일이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면, 그 고통을
견디어내고 만족하여라!
고통받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다.

너에게 특별한 재능이 없거나 육체적, 지능적으로 부족한 것을 네가 인내로
참아받을 줄 안다면, 너는 훌륭한 지혜의 소유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재치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느님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지식은 고통받을 줄 아는 것이며, 가장 큰 행복은 고통이다.
하느님께서는 고통과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거룩하심을 우리 영혼에 새겨
주신다.
고통은 가장 고귀한 순교이다. 왜냐하면 순교는 영혼이 홀로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하여 영혼으로부터 육체를 갈라 놓은 것이 아니라 영혼을
피조물로부터 떼어 놓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육적인 죽음은 영혼들을 육신에서 갈라 놓는다.
하느님의 비추임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죽음은, 영혼이 정서와 욕정과
욕망으로부터 헤어나서 ‘나는 이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하느님께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익한 생활에로 옮겨진다.”
모든 불순하고 속된 것을 하느님은 소름이 끼치듯 싫어하신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분의 간택받은 자들을 마치 용광로에 있는 금과 같이,
고뇌의 불 속에서 정화시킨다.

우리가 만일 고통을 피한다면 진보와 사랑의 순결을 피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헐벗고 굶주린 채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완전한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이다.
우리의 거룩하신 정배는 간택받은 영혼들을 대부분 십자가와 시련으로
단련시키신다.
감미로운 위로는 자애심만을 양육하기 때문이다.
당신 홀로 영혼들을 소유하시려고 그분은 그들을 고독에로 인도하시며,
하느님은 그들이 세상에게서, 그리고 세상이 그들에게서 싫증나게 만드신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그들을 더 높이 평가해야겠다.
그들은 우리를 순수한 사랑에로 더 잘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쁨 중에서나 고통 중에서 사랑하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고통 중에 우리는 그분을 더 순수하게 사랑한다.
그 때 우리는 그분 외에는 사랑할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고, 십자가의 정신을 주신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애정깊은 활동임에 틀림없다.

<오, 끝없이 인자하신 주여! 당신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도록 저를
고통받게 하셨으니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수반되기 때문에 나는 양팔을 벌리고 기쁜
마음으로 궁핍과 멸시와 가난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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