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겁을 내느냐?" (마르 4,40)

2021. 6. 25. 오후 5: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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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겁을 내느냐?" (마르 4,40)


마르코는 복음을 통하여 구약의 탈출기를 상기시켜 줍니다.
파라오의 군대가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물결이 넘실대는 홍해를 마주한 이스라엘인들은
겁을 내고 두려움에 떨며 모세와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는 하느님은 바다를 갈라 마른 땅을 밟고 구원의
땅으로 향할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바람과 성난 물결을 다스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은
거센 돌풍을 만나 죽을까 두려워하는 제자들 앞에서 바람과 호수까지도 복종시키시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즉, 이분이 바로 구세주이시며 주님이심을 마르코는 복음을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제자들과 우리 믿는 이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신앙을 고백하고, 매 주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 고백을 되새깁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손수 만드신 세상의 주인이시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며, 영원한 삶을 이루어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주 나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얕다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본고향인 하느님께 되돌아 나아가는 순례의 길, 곧 인생 신앙 여정에서 때때로 삼켜버릴
것처럼 닥쳐오는 거센 돌풍과 성난 물결을 만나게 되면 믿음이 심하게 흔들려 겁을 먹곤
합니다.
돌풍이 일어 배 안이 물로 가득 차서 죽게 되었다고 예수님을 깨우는 제자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는데도 죽을까 봐 겁을 냈습니다.
예수님이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잊거나, 그분이 바로 구세주, 주님이심을 믿지 못한 탓입니다.
예수님을 잊든, 믿지 못하든 두 가지 경우 모두 그분이 아니라 다른 것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무엇이든 주님이 아닌 다른 것, 탐욕과 이기심, 시기와 질투, 교만과 불의 같은 것이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한다면, 그분께서 지금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된 순간, 직접 돌풍으로 흔들리진 않아도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이끄셨듯이 바람과 호수마저 복종시키는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사실을 끝까지 기억한다면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 올라탔다 해도 겁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네 세상살이에서 겪는 고난과 아픔의 흔들림에도 겁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박명기 다미아노 신부 (향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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