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담론 (Parables)

2021. 6. 14. 오전 5: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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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담론 (Parables)


비유의 설명 (에제 17,22-24)

오늘 제1독서(에제 17,22-24)는 앞서 나온 대목인 에제 17,1-10의 비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향백나무"는 다윗 왕가를, "꼭대기 순"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메시아(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연한 가지' 처럼 육화되어 오실 것입니다.
향백나무의 연한 가지가  심어질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은 메시아께서 임하실
시온 산이며, 가지로부터 시작하여 번창하는 나무에게서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볼
"들의 모든 나무"는 주변 이방 민족을 가리킵니다.

믿음에 따른 삶 (2코린 5,6-10)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사도직은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간 안에 담기고, 하느님의 섭리가 그 안에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받는 고난의 직분에 감격합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겪는 환난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이루어질 때,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주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갈릴래아 호숫가로 나오셨을 때 해주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배를 띄우고 그곳에 앉으셔서 비유로써 말씀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설명하고자 하신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어떠한 언어로도 규정될 수 없기에,
난해한 주제를 전달하는 방편으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건기와 우기를 구분하여 농사를 짓는데, 그 방법은 무차별적 파종,
곧 "씨를 뿌려"(마르 4,26) 놓는 것입니다.
복음 선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유를 듣는 대상은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겸손함에서 자라납니다
(마르 4,27 참조).
예수님께서는 왜 겨자씨를 비유로 쓰셨을까요?
하느님 나라가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게 여겨지더라도 그 안에는
엄청난 가능성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의 순간에는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수확 때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결정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반드시 도래하고 완성될 것입니다.

변하는 토양과 복음의 씨앗

복음의 씨앗이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스-로마로 넘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 철학'의 언어와 사상으로 설명되어야 했습니다.
토양은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가톨릭교회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길을 타진한
현대적 개혁이 목적이었습니다.
선교사로서 10년 넘게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와서 보니, 한국 천주교회는 여전히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신자들의 고령화, 미래 세대의 종교적 무관심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쉬는 교우의 증가와 같은 교회의 위기는 COVID-19로 갑자기 오지 않았습니다.

4세기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책임은 (씨 뿌리는) 사제와 주교들에게 있다.
성경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사목 열성이 적었다.
그리고 신자들을 성장시키지 못했다."
교회는 변화하는 토양에 맞추어 적절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사목자들의 단발적 의견이 아니라 교회 심장부의 해결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충열 티토 신부 (용현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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