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 건설의 원칙인 '삼위일체 신앙'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과, 사람이되시어 수난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생명을 주시고
서로를 일치시키시는 파라클리토 성령께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바치는
성호경을 통해 삼위께서 각기 틀림없는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한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지난 부활시기 동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어떻게 활동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그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축일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구별되시면서 한 분
하느님이시라는 사실, 다시 말해 매 순간 함께 구원 사업을 이루셨고
똑같은 존경과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기억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 10,30)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분이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삶의 현장이던 갈릴래아의 산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8-20).
오늘날 현대인들은 삼위일체라는 하느님의 내적 신비보다는 우리에게 직접 주어지는
은총과 관련하여 하느님의 능력이나 권능에 더 관심을 갖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는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신앙인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서처럼, 세례나 가르침 같은 선교적 성과들에 앞서 반드시
강조되어야 할 신앙의 핵심 진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삼위일체의 신비는 권위와 권한이 중요시되고 수직적 서열이 중심이 되던
옛 시대에는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삼위의 관계가 서열의 관점에서 이해된 탓입니다.
그러나 현대 민주사회에서, 특히 서열이나 계급보다는 개인의 인권과 고유성이
중요시되고 서로 동등한 사랑으로 맺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질서에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미래 세대인 젊은이들에게는 필수적인 삶의 원칙입니다.
최근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변하고, 신앙생활을 하기에도 힘든 여건입니다.
이러한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고유하게 존중되시는 동시에,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완전한 일치를 이루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고유한 개인을 존중하며 사랑으로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우리 가정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모두를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면서
사랑과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믿으며 세상의 모든 이웃과 피조물과 사랑으로
일치되는 삶을 살아갈수 있기를, 특히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또는 어느
자녀에게만 권한과 능력이 집중되기보다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각기 고유한 인격으로
존중되는 가운데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드러낼 수 있기를 빕니다.
-김종원 세례자 요한 신부 (정약종관)-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5월, 성모 성월 끝자락에 만난 성모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자그마한 키가 안쓰러워 고개를 기울여 주시는 걸까요?
삼위일체의 신비는 곧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하며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노라던 주님의 크나큰 사랑을 마음속에 새기며,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보듬어 힘이 되어 주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사진설명 / 의정부교구 수동성당 - 이복희 릿다 | 가톨릭사진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