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주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지극했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황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를 기억하고 이에 감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하고 인사하셨습니다.
발현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평화는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로서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행복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을 합니다.
이 행복을 위한 조건이 바로 평화입니다.
개인의 평화, 가정의 평화, 세상의 평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이 평화를 선사하시면서 다음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이제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 두려움에서 벗어나 세상 속으로 파견됩니다.
그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셨던 본래의 자리로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 본래의 자리란, 다음의 말씀에서 구체화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인간에게 있어서 죄는 하느님 앞에서 짊어지게 되는 멍에며 스스로 지워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원죄로 인해 인간에게는 노동과 산고(産苦)
그리고 죽음이라는 대가가 주어졌습니다.
태초의 이 죄는 살인과 더불어서 인간의 악한 삶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멀어진 인간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인간의 죄성(罪性)을 지워주심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 죄를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령을 통한 죄의 용서'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토마스 사도에게 하신 이 말씀은 주님께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당신의 뜻이 올바로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주님께서 살아생전에 보여주셨던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그분께서 말씀과 행적으로 보여주신 참 하느님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그래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된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의 예수님과 오늘의 예수님은 같습니다.
살아생전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은 같은 분이십니다.
내 마음 안에 자리하신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분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청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과제입니다.
-장순관 파트리치오 신부 (호원동 협력사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