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앞에서 부유하다는 것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하트마 간디가 지적한 "7가지 사회악" 목록이 떠오른다.
1. 노동 없는 부(富)
2. 의식 없는 쾌락
3. 품성 없는 지식
4. 도덕성 없는 상업
5. 인간성 없는 과학
6. 희생 없는 예배(worship without sacrifice)
7. 원칙(철학) 없는 정치.
자신의 본향(本鄕)을 망각한 인간이 엉뚱한 데에서 자신을 실현하다 보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답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제시해주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자 되고,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땅이 아니라 위에 있는 것만 생각하고 추구한다는 것은
세상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고,
세상사는 데 필요한 재물의 사용과 마땅한 저축 자체를 멀리하라는 뜻도 아니다.
우리의 인간조건을 온전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물을 다루고 쌓는 데에만 열중한 나머지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 경계하라고 말씀하신다.
탐욕과 과욕과 같은 나쁜 욕망이 이처럼 우상숭배인 것은 신명기에 나와 있듯이
모든 걸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도 커다란 장애가 되며,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삶이야말로 코헬렛 저자가 한탄하듯이 결국엔 헛되고 허망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재물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 생기는 수많은 비극을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원인을 분석하다보면 결국엔 소수의 극도로 지나친 탐욕과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른바 국민들의 삶이 힘든 것은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도둑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만 재화를 모으지 않고 탐욕을 경계하여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은
영원한 생명의 길임을 복음은 말하고 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안에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그런 나쁜 욕망이 어떻게 꿈틀거리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보자.
결국 헛될 뿐 아니라 인간을 망치는 그런 우상숭배를 버려 새 인간을 입은 사람이
되어 보자.
결국 우리가 지내고 있는 자비의 해도, 사랑하도록 창조된 우리가 마음과 시간과
재물을 탐욕을 채우는 데 내어놓지 않고,
참되게 사랑하는 데 내어놓아,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해이다.
-김성봉 프레드릭 신부(전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