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5일 (녹) 연중 제10주일

2016. 6. 5. 오전 6:08:35

글자

 

2016년 6월 5일 (녹) 연중 제10주일

 

 

외롭고 가난한 이들의 위로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주님 말고 의지할 데라고는 아들밖에 없는 과부의 하소연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대 예언자인 엘리야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과부의 아들을 살려 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 내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 미사를 시작합시다. 독서 <보시오, 당신 아들이 살아 있소.> 1열왕 17,17-24 <하느님께서는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갈라 1,11-19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루카 7,11-17 엘리야가 머물던 집의 주인인 과부의 아들이 죽자,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아들을 살려 주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이라며,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다고 고백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 내시자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느님을 찬양한다(복음). *구약 시대부터 신약 시대를 넘어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약자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들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살 수 없는,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과부는 그런 이들을 상징하는 성경의 인물입니다. 엘리야도 예수님도 과부가 의지해 온 아들의 죽음을 묵과할 수 없었던 인간적인 이유는 '측은지심' 때문이었지만, 실상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불러일으키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죽음이나 고통, 슬픔, 좌절에 인간을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다시 일으키시고, 치유하시고, 위로하시며 희망을 심어 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버렸습니다. 선택된 유다인들만이 아니라,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처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실천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 이웃 사랑에 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실천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웃을 너무 멀리서 찾기 때문입니다. 얼마간의 기부금을 내는 정도로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지 말고, 혹시 내 가족 가운데, 내 가장 가까운 친구와 교우들 가운데, 나와 무관하다고 여겨 온 내 이웃들 가운데 아들을 잃은 과부의 슬픔을 안고 있는 이들은 없는지 살펴볼 때입니다. -매일미사에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도.묵상 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