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보다 큰 하느님의 사랑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현저히 길어졌습니다.
고치기 어려운 병도 쉽게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대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은 피할 수 없나 봅니다.
오늘 첫째 독서의 주인공은 고통 한가운데 있는 인간, 욥입니다.
그는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두고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복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연달아 닥친 불행은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전부 잃고, 재산도 사라지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악성 종양이 덮쳐 건강마저 잃어버립니다.
엄청난 고통에 짓눌린 욥은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라고 부르짖으며,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절망의 말을 내뱉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면 누구나 욥처럼 절규하면서 몸부림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질병과 고통 중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돌보십니다.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열병에서 낫게 해주십니다.
갖가지 병을 앓는 많은 사람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은 고통 받는 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호의적으로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또한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묵시 21,4)
미래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새로운 세상이 당신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편안하게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 길을 떠나십니다.
좋은 부모 같은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인 우리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종종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좋으신 하느님이 왜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낱낱이 알 수는 없습니다.
적지 않은 경우, 우리가 철이 들라고 고통을 겪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처럼 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타내어 멀리 떠났지만, 그 돈이 바닥나자
무진 고생을 한 끝에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고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철부지가 철이 들도록 고생길로 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큰 고통을 당하면 하느님께 벌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놓으신 분입니다.
설사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느님은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도록” (로마 8, 28)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또 믿읍시다.
아울러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 곁에서 힘이 되어
줍시다.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이 된 사도 바오로처럼
말입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서울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