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의 증언

2015. 2. 6. 오전 6:47:42

글자

 

내 하루의 증언

 

 

요즘같이 건강에 관심을 갖는 시대에 살고 있어 저도 건강이라면 눈을 번쩍 뜨고 정보를 얻으려 합니다. 건강식품도 사고, 사실 식사도 나름으로 좋다는 것을 먹으려 합니다. 그러다가 감정 기복이 심한 저는 그 쌓아 놓은 건강을 한순간 확 털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기도 합니다. 배탈이 나고 어지럽고 근육도 아프고 관절 통증으로 삶이 무겁기만 하지요. 그러면 정신까지 나약해져 무엇을 잡고 무엇을 기대고 살아야 하나 막막해지면서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다시 자학이 시작됩니다. 그럴 때 가장 미안한 분이 주님입니다. 나름으로 새벽 미사를 드리며 주님의 피와 살을 제 몸으로 받는 영성체의 거룩한 체험은 하나의 거대한 약속이 아닙니까. 내 몸속에 주님을 모시는 또 하나의 성전으로 내 몸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라면, 머릿속과 입으로만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전환의 힘을 얻어야만 주님을 섬기는 약속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에라 모르겠다.' 나를 집어던지는 순간에 주님을 던지는 것이라고 내가 나에게 속삭이지만, 감정 기복은 또 쌓아 놓은 귀한 언약을 확 털어버립니다. 저는 성체를 받는 사람입니다. 제가 적어도 주님과의 약속에 난폭하지 않고,누가 보더라도 주님의 딸이라는 증언이 살아있기를 저는 바랍니다. 언젠가 내 삶의 바통을 넘길 때 저도 '행복했습니다.'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려면 내 일상의 증언이 어깨에 맨 주님의 뜻을 결코 내려놓지 않고 끌고 가는 지구력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저는 새해 첫날 흔한 꽃 화분 하나를 사고, 이름을 '오늘' 이라고 지었습니다. 오늘을 기도처럼 성실히 살아보려고, 오늘을 딸들처럼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과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오늘은 즐기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견디며 극복하는 일이 더 많지 않은가요. 오늘의 또 다른 이름은 극복입니다. 도저히 안 된다고 손을 놓아버리려는 사람에게 극복 인자만은 꼭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법이니까요. 그 길은 저같이 연약하고 게으르고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에겐 너무 먼 길이지만, '에라!' 라고 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라 견디는 내성이 강한 하느님의 딸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이기는 극복 정신도 의무입니다. 오늘의 극복 의무는 마음을 옭아매는 일상의 멍에가 아니라 안식이 되고, 하느님과 아름다운 대화를 하는 갈망이 될 것입니다. 오늘, 바로 오늘 모든 일에 조신하게 몸을 낮추고 믿음에서는 키를 높이는 신앙적 정진이 내 삶의 좌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루치의 증언에 최선의 약속으로 내일을 채울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신달자 엘리사벳-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기도.묵상 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