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 영성피정 (2006.05.27-2006.05.28)
강사 조학균베드로 신부 (서강대 교수/예수회)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지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였는데, 예수님은 왜 베드로를 첫번쨰 가는 제자로 받아들이셨는가?
베드로는 말로만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행동으로 실천한 제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첫 번째 가는 사도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어떤 기준에서 선택을 하셨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직업, 지위 고하, 빈부 등을 가리지 않았다. 어부도 부르셨고, 세리도 부르셨으며 베드로처럼 선주(사업가)도 부르셨다.
신앙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이지, 이 사람 저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그리스도의 잣대로 보아야 한다. 내가 상대를 나의 잣대로 판단하는 순간 상대방도 그 사람의 잣대로 나를 판단하게 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에 남의 잘못은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 줄 때 사랑이다. 내가 주고 싶은 것만 주면, 그것은 오만일 수 있고 교만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강아지에게 우유를 먹이려고 한다. 우유를 병에 담아 억지로 먹이려고 하자 강아지는 먹는 것을 거부하고 달아나 버렸다. 그 사람은 실수로 우유병을 방 바닥에 넘어뜨렸고 우유는 방바닥에 쏟아졌다. 그러자 달아났던 강아지가 달려와 방바닥에 쏟아진 우유를 맛있게 핧타 먹었다. 강아지가 원하는 것은 병 속에 있는 우유가 아니라 먹기 쉬운 접시에 있는 우유나 방바닥에 있는 우유를 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바로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마리애 단원인 것이다. 우리 레지오마리애 단원은 변화되지 않으면 마지막 날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깨 닳기 바란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반지를 교환하게 되는데, 왜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는가?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가락을 하나씩만 펴보면 네 번째 손가락은 혼자의 힘으로 절대 펴지지 않는다. 그러나 두 손가락을 함께 펴면 펴진단. 이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서로 의지할 부분을 찾는다는 의미가 있다. 인간은 부족함이 있을 때 의지할 곳을 찾는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은 찾는 것이다.
대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말을 많이 하여 상대방을 설득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성지 주일 이전에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사셨고, 성지 주일 이후에는 우리들(인간)만을 위해서 사셨다.
레지오마리애 단원은 달라 저야 한다. 상대방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레지오마리애 단원이다. 나를 희생하여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야 한다.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아름다움은 들어난다.
용서란 흔적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용서 해 주었다고 하면서 지나간 일을 다시 기억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고 그냥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와는 달리 죄를 지었다는 것 자체를 없애버리신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조하지 말라. 과부의 헌금은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 표현이다. 하느님께서 ‘한가지 소원을 들어 주시겠다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원한다고 대답할 것인가? 지혜, 건강, 돈, 명예 등등… (답은 건강이다)
사람은 무엇을 원하여 채워지면 또 더 다른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대로 살게 해 주세요”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자.
기도는 자신의 기도를 하자. 예수님께 반항도 하고, 거부도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다라고 떼도 써야 들어주신다. 그러나 하느님께 삿대질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하느님께 청원을 할 때는 들어 주실만 한 것을 요청해야 들어 주신다. (예, 로또복권을 당첨되게 해주세요) 어머니는 자식이 자신에게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서운했던 것은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가 안해준것만 기억을 한다.
벨기에 소녀가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아왔다. 관리인이 소녀에게 “탄광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얼굴이 세 까맣게 되어 있어 아버지가 나와도 네가 찾을 수가 없으니 그냥 집에 가서 기다려라. 그러면 아버지가 집으로 가실 것이다.”하자 그 소녀는 “아저씨! 저는 아버지를 못 알아봐도 제 아버지께서는 저를 알아보실 거예요.”라고 대답을 하였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뭘 원하는지 다 알고 들어주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