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09. 꾸리아에서 피정을 떠나는 감곡성당을 소개해 드립니다. 참고 하시고 좋은 피정 되세요
(자료는 한국교회사 연구소 발행 한국가톨릭대사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감곡성당 소개
청주교구 소속 본당으로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357-3 소재. 1896.09.17.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매괴의 성모. 설립 당시의 명칭은 장호원 본당.
장호원 지역은 본래 부엉골 본당 관할지역에 들어 있었다. 부엉골은 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있던 산간마을로 1885년 예수성심 신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우 촌이 조성되었고, 1887년 신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얼마동안 본당으로 남아 있었다. 1896.09.17. 장호원으로 본당이 이전되었으며, 당시 신자는 5~6명에 불과하였지만 본당의 관할지역은 경기도 여주, 이천, 충청도 단양, 제천, 충주, 음성, 괴산, 진천, 청주, 보은 등이 여기에 속했으며, 공소 수 27개에 총 신자 1,300명에 이르고 있었다.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하여 다음해 9월에 완공하였고, 그 해 10월2일 뮈델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을 갖게 되었다. 신축 성당의 규모는 한옥과 양옥의 절충식으로 총 80평에 달했다.
<성장과 변모>
1907년 부이용 신부님은 남학교인 매괴학당을 설립하였고 1912년에는 여학교를 설립하였는데 그 중 여학교는 그 해 본당에 부임한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수녀님들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들 학교는 이듬해 6년제 보통학교로 과정이 변경되었다. 1914년부터 매산(장미의 언덕)에서 성체 거동을 시작하였고, 1936년 정식으로 학교 인가를 받게 되었으며, 1930년 10월 7일에는 종각 높이가 130척이나 넘는 현재의 고딕 연와조 성당을 신축하였고, 1933년 본당 성가집을 편찬 간행하였다. 이렇듯 부이용 신부님과 신자들의 열성으로 본당의 교세가 크게 증가하여 1937년에는 총 신자수가 2,150명이 되었다.
일제 말기가 되면서 일본인들의 감시와 간섭이 계속되었고, 1942년에는 보좌 조인환 신부님이 사소한 일로 투옥되기까지 하였다. 한편 일본인들은 매산 언덕에 자기네들의 신사참배를 건립하려고 획책한 일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부이용 신부가 자신들의 적국인 프랑스인이라는 이유로 용산 신학교에 연금 시켜 장금구 신부님이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 후 1953년3월 매괴학교를 매괴상업학교로 변경하고, 1966년 매괴여중 상업학교의 인가를 받았으나 초등학교는 1972에 폐교하였다.
한편 감곡본당은 충청북도의 모 본당으로서 1920년 고마리본당, 1932년 청주본당, 1945년 충주본당, 1957년 무극본당 등이 분할 설립되었으며, 1986년 본당설립 90주년을 맞이하여 성모동산을 정비하고 부이용 신부님의 입상을 제작, 축성하는 동시에 감곡본당 90년사를 편찬 간행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