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초대의 글(정의구현 사제단)

2011. 2. 24. 오후 5:19:46

글자

† 주님 초대의 글

 

   오늘 우리 10구역 사도회에서는 정치 권력의 힘을 아는, 소수 사람들의 조종을 받고 있는 소위“천주교 전국 정의구현 사제단(이하‘정구사’라 칭함)”으로부터  복음과 교회, 교도권을 지키기 위한 평신도로써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묵상 하고자 합니다.

  정치권력은 개인 또는 사회 집단의 행동이나 사고(思考)를 당사자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부여 혹은 박탈을 하여, 특정한 방향으로 통제하는 힘을 말합니다. 복음(福音)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내리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신약 성서 중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담은'4복음’을 말하며, 예수님의 신성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미사 때의 복음은 부제나 사제만이 낭독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복음 낭독 전에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를 긋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에 간직하며,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겠다는 다짐의 표시입니다.

  또한, 교도권(敎導權)은 계시의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꺼내어 성령의 빛으로 밝혀 줌으로써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고, 오류로부터 진리를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교회는 교도권을 행사하여 기록 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유권적 해석 임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새로운 공적 계시를 신앙의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정치권력과 복음은 가치의 척도나 가치관이 다르므로 혼동할 일이 아닙니다. 현실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정치권력에 의한 결정, 결단을 필요로 하는 상대적 가치이고, 복음은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가치입니다.

  정치문제는 아무리 올바른 정책이라 할지라도 반대와 지지로 양분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정당, 지연, 학연, 혈연, 남녀, 연령 등 이해 정도와 보는 시각에 따라 사분오열 되는 것이 본질입니다. 사제가 이러한 정치논리에 편승해서 동료사제, 교우 간에 편 가르기로 갈라놓는 것은 마귀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현실정치문제의 상대적 가치에 교회가 너무 깊숙이 참여하게 되면 교회는 세속화 되고 권력을 추구하는 세속 집단으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교회의 절대 진리를 강론해야 될 사제들이 하느님 말씀 아닌 국가 정책 결정 사항을 강론으로 얘기한다고 하면 앞으로 신자들은 신부님의 강론을 선택적으로 가려서 들어야 된다고 하는 혼돈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많은 사회 현안들에 대해서 발언하고 현실 참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정치나 현실에 대한 그것을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현실에 참여할 때 지향하는 가치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것은 복음적 가치여야 합니다. 이는 절대적 가치이므로 교회에서 그기에 이론이 있을 수 없으며,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이단일 것입니다.

  정구사 사제들은 길거리 촛불 미사 집전, 주한미군 철수, 평택 미군기지 반대, 국가 보안법 폐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4대강 정비 반대 등,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외치면서 급기야는 교황성하 위에 군림하려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특히, 길거리 미사집전에서 이분들의 처신이 사제답지 않고 사제로서 직분을 벗어났습니다. 분노에 찬 상기된 얼굴로 무절제하고 독설에 중독되어 마침내 독선에 가득 차 사제의 언어감각 조차 잃어버린 이분들이 제의를 걸치고 성물을 집행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아야 합니까. 이분들이 정치권력의 맛을 본  일부 사람들의 꼬드김에 홀린, 정의구현을 사칭한 불법 임의단체의 꼭두각시 사제들이라는 사실을 사회 일반 사람들은 잘 알리가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그들로 인해서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태오복음 5장 48절「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이 말씀은 예수님을 닮게 살아 라고 하는 뜻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입니다.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의 모습은 온유하고 사랑과 겸손 그 자체입니다. 정구사 신부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온유하지도 겸손하지도 않습니다. 증오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세상을 변환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와 같이 맞서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메세지를 잊으셨나요. 증오심은 더 큰 증오심으로 커 간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는 미사 때 소녀복사 인정, 미사 전례 시 라틴어가 아닌 각 나라 고유 언어를 사용하기로 한 것 등을 비롯해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사도직 활동 중에서 교회사명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 등 평신도가 교회를 함께 책임을 진다는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2000여 년간 교회가 발전해 오면서 위기 마다 개혁이나 정화운동이 평신도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부 사제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라는 교회 내 불법조직을 결성하여 교회법전 제300조, 제312조를 상시 위반하고, 나아가 장상에 압박을 가하고, 하극상으로 교회 법도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서 제273조, 제1373조, 제1390조 위반하였으며, 항명, 불순명, 선동, 중상(中傷)에 가담하였고, 이에 동의한 사제도 교회법전 제1333조, 제1341조, 제1347조, 제1417조, 제1476조를 위반했습니다. 주교회의 의장이 해당 교구장의 교도권 의견과 상치되는 발언을 한 것, 이 또한 교회법전 제455조 및 제455조 제4항의 위반은 물론, 자칫 정구사 사제들을 더욱 부추길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더 늦기 전에 평신도와 평신도 단체들이 나설 때입니다. 사제와 사제 간, 상하 간, 또는 장상의 교도권에 대한 도전 등 주도권 싸움 같은 양상을 보이는 심각한 갈등현상은 지체 없이 정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평신도는 절대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서 교회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10구역 사도회와 증거자들의 모후 단원만이라도 평신도의 사명과 레지오 정신에 따라 성모님의 전위병으로서 복음과 교회, 교도권을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아멘.

 

2011.   2.   .

천주교 서울대교구

시흥5동 성요셉 성당 제10구역 사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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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자들의 모후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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