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구의 배티 성지]
한국 천주교회가 받은 100년의 박해 기간 동안, '배티' 골짜기의 이곳저곳에는
비밀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모방 나 베드로 신부가 1836년과 1837년 두 차례에 걸쳐 교우들에게 성사의
은총을 베푼 곳도 바로 여기이다.
1850년에는 '조선교구 소신학교' 교장으로 임명된 다블뤼 안 안토니오 신부(1857 년 주교 수품)가 배티에 신학교 건물을 마련했다. 이것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학교였다.
이어 1853년 여름부터 신학교 지도를 맡게 된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54년 3월, 이곳에서 공부하던 학생들 중 세 명을 뽑아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유학을 보내고 신학교 문을 닫았다. 폐교된 신학교는
성당 과 사제관으로 사용헀는데 배티 교우촌을 사목 중심지로 삼고 전국 5개
도를 순방했다.

한국 천주교회가 받은 100년의 박해 기간 동안, '배티' 골짜기의 이곳저곳에는
비밀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모방 나 베드로 신부가 1836년과 1837년 두 차례에 걸쳐 교우들에게 성사의
은총을 베푼 곳도 바로 여기이다.
1850년에는 '조선교구 소신학교' 교장으로 임명된 다블뤼 안 안토니오 신부(1857 년 주교 수품)가 배티에 신학교 건물을 마련했다. 이것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학교였다.
이어 1853년 여름부터 신학교 지도를 맡게 된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54년 3월, 이곳에서 공부하던 학생들 중 세 명을 뽑아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유학을 보내고 신학교 문을 닫았다. 폐교된 신학교는
성당 과 사제관으로 사용헀는데 배티 교우촌을 사목 중심지로 삼고 전국 5개
도를 순방했다.
[속리산 산행]
5월의 푸르름을 만끽하는 성모성월!
산악회 회장님 부부와 임원진분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
푸른 벌판과 날개짓 하는 새들의 생명력. 눈이 즐거운 꽃들의 하모니~~
이 모든 걸 허락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