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만난 성모님
황2007. 6. 27. 오후 10:25:48
글자

1960년대 초 나는 일산 성당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고등학교에 부임하게 되었다.자취하던 집도 바로 학교 옆이었는데, 자취방에서도 성당이 올려다 보였고새벽과 한낮, 그리고 저녁이면 삼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때는 성당에서 매일 삼종을 쳤다.
그 소리는 온 마을로, 들판으로 퍼져나갔다.살아오면서 성당을 접한 일이 없는 내게 성당 종소리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종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두 손을 모으로 기도를 드리는자세로 서 있곤 했다.수업을 하다가도 그렇게 서 있어야 될 것 같은 경건함이었다.나는 그 종소리에 이끌려 매일 새벽 미사에 참례를 했다.신자도 아니고, 미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성당 맨 뒷자리에 앉아 신부님이 집전하는미사를 지켜 보았다.제대 중앙에 걸려 있는 고상 또한 너무나 인상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보여주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 고상은나를 그분의 고난 속으로 끌어들였다.상징적인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는 예배당보다 마음이 더 끌렸다.그때 바라본 고상보다 더 아름다운 고상을 지금껏 나는 만나본 일이 없다.그 무렵 나는 다니던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었다.그렇다고 천주교에 입교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그러던 어느 날 초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무심히 성당 뜰로 들어섰던 것 같다.언덕으로 오르는 길 중앙에 성모님이 기다리시기라도 한 듯 나를 향해 웃고 계셨다.장미 떨기 가운데 서 계신 성모님은 두 팔을 벌려 나를 맞아 주셨다.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어둠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아무 부담 없이, 성당의 수녀님을 만나듯 편안하고 두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나는 성모님께 여쭙고 성모님은 미소로 대답하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다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그때 가슴에 넘쳐나던 환희! 그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없지만,가슴으로부터 넘쳐나던 그 환희는 지금도 표현할 길이 없다.다음 날 다시 성당을 찾았을 때 그 자리에는 웃고 계신 성모님의 석상이 서 계실 뿐내가 만난 성모님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던 그 미소가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다웠는지, 그 모습이얼마나 다정하셨는지.
내가 성모님을 다시 만난 것은 교통사고로 성 바오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만신창이가 된 육신의 고통을 차마 견디지 못해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바라보며,생살에 못이 박히신 예수님의 고통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며, 울며 고통을참던 날 밤이었다.차라리 내 삶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를 바치는데 얼굴을 가려 보이지 않는 성모님이,구름을 타고 오시듯 가볍게 밀려와 두 손을 내 가슴위에 올려놓으셨다.나는 스르르 잠이드는 것처럼 편안해졌다.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스위치를 눌러 병실 불을 켰다.아무도 없었다. (특실을 혼자 쓰고 있어서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나는 두렵고 섭섭한 맘으로 불을 다시 꺼 보았으나 그분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내게 있어 불가사의한 이 두 만남의 기억이 때로는 환상인가, 꿈결인가 생각해 보기도하지만, 설령 그런 성모님과의 만남의 순간이 내 마음으로 만난 것일지라도 성모님이내게 주신 사랑으로 간직하며 괴롭고 고달플 때마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위로를 삼는다.
-변해명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