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버리다/얻다

2006. 3. 17. 오후 11:42:35

글자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사건중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다.


1~2절-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외아들,이사악을 당신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실로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없는 시련을 주신다.

*번제물을 바치는 행위-제사중 가장 급수가 높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불태우는것(손톱이나 머리카락까지도)

3~5절-아브라함은 복잡한 심정으로 모리야땅으로 길을 떠난다.

       신성한 제사를 방해받지 않기위해,그리고 타인에 의해 마음이 약해지는것을 막기위 해 하인들을

       남겨놓고 이사악과 산에 오른다.

6절-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이사악에게 지우고,자신의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장작이 무거웠음에도 어린 이사악에게 들린 이유는,불과 칼이 사랑하는 아들을

    다치게 할까봐라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8절-이사악은 아버지에게 “번제물로 바칠 양이 어디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아브라함은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라고 대답한다.

       이사악은 한 아버지의 외아들을 뛰어넘는 특별한 언약의 아이였다.

       하느님 약속과 축복이 이사악에게 달려있는데..그 약속이 아브라함의 생애에 얼마나

       중요한것임을 알고 계신데...

       그러나“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라는 것은 아브라함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은 진실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에서 갑자기 베드로의 고백이 떠올랐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시는 예수님의 물음에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실을

       말했던 베드로.

9절-마침내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장작위에 이사악을 묵어 올려놓았다

      이 구절에서 이사악은 말이없다.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온전히 신뢰하듯 아들 이사악도

     아버지에게 온전히 신뢰하는 모습.부전자전.

10~12절-그때,주님의 천사가 급박하게 아브라함을 부르며 이사악에게 손대지 말것을 당부한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곳을 떠나고,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감탄하신다.

  *천사-구약에서 천사는 하느님 자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던 시대,하느님을 완곡하게 표현.

        * 야훼->히브리어)아도나이.

               새번역)주님으로 표기

  =>이 구절을 [아브라함의 제사]라는 책에 렘브란트가 그림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13절-눈을 들어보니 숫양이 보였고,그것을 아들 이사악 대신 번제물로 바친다.

  *숯양-가장 정규적,완전한,흠없는 제물.

        (숯양이 없을땐 숯염소,비둘기등등을 바쳤다고 하심)

###이상1~14절까지는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5절~19절-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즉 온인류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명령을 들었을때의 경악,길을 걸어가며 느낀 비통함,걸음을 되돌리고 싶었을 유혹을 뿌리치고 하느님을 택했던 아브라함.그 한사람의 믿음으로 결국 우리대에까지 하느님께서는 축복과 약속을 이어가시고 계신것이다.이렇듯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소중하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졌으며,타인에게 축복을 줄수도 저주를 줄수도있는게 바로 나자신이다.

교만을 벗삼아 파멸로 이를것인지

겸손함을 가지고 타인에게 복을 끼치는 삶을 살것인지..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그리고,그 여정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고달프고 때론 냉혹하게도 느껴진다.

하지만,하느님 약속안에 있는 길이기에 희망의 길이다.

기다림이 없는자 희망이 없는 자이며,기다림을 포기한 삶은 죽음이다.

마더데레사 성인은“기다림도 기도입니다.”라고  말씀하셨었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살아있음’은 곧 ‘기다림’이 아닐까요?


-이상으로 2주에 걸친 아브라함의 묵상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결론이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모세에 대해 강의 해주신데요~^^*

   옛날얘기를 듣는것처럼 흥미진진한데요..ㅋㅋ

댓글 1

  • 2006년 3월 19일 오전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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