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때 이른 봄맞이 청소를 하면서 오랫동안 내리지 못했던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큰일을 치렀습니다.
삼십년 가까이 우리 가족과 함께하면서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눴던 피아노를 다른 집으로 이사 보낸 것이지요.
옅은 황백색의 우아한 빛을 발하는 그 피아노는 내세울만한 이렇다 할 가구가 없는 저희에게 오랜 세월동안 자존심을 살려주는 역할을 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걸 큰 자랑으로 여겨 왔었구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차츰 그 피아노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더구나 덩치가 커진 이후에는 아이들조차 피아노 앞에 앉는 일이 드물게 되면서부터는 언제나 오연한 자세로 안방 한구석에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곱지 않은 눈길이 자주 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그것을 다른 집에 이사보내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날, 제가 퇴근해 집에 오니 벌써 피아노는 어딘가로 떠나가고 방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더군요.
그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저희 가족의 자유를 제한하던 애물단지가 사라진 후련함을 느꼈던 것은 저의 무정함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던 공간의 넉넉함이 저의 마음에 그대로 여유롭게 전해져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날의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주위에 있는 것들을 비우고 정리하는 것이 저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와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가를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로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아침일과를 준비한 후 여섯시 오십분에 집을 나서 출근하는 ‘아침 형 인간’으로 바뀐 생활을 해오고 있으니까요.
새벽미사도 나가야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삶의 여유 없음을 한탄 하곤 하지요.
우리의 주변, 또는 우리의 내부에 널려져 있는 모든 문제들로 인하여 우리가 그러한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든,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든 이러한 작은 부분들부터 정리해 나감으로써 큰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본의 ‘니시무라 아키라(西村 晃)’는 그의 ‘정리의 기술(整理の技術)’이라는 책에서 주변정리와 오래된 것들 버리기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습니다.
그는 주위에 널려있고 우리가 매일매일 접해야하는 구체적인 사물만이 아니라 생각(사고)과 시간과 심지어는 인간관계마저도 서서히 정리해 나갈 것을 권고합니다.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림으로써 생활의 공간을 여유 있게 확대하라는 것이지요.
‘필요한 것을 하나 찾을 때마다 3개씩 없애라.’ ‘서류함의 75퍼센트가 차면 덜어내기 시작하라’고 그는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진 자와 가벼운 트레킹 차림으로 걷는 자중 누가 더 지치지 않고 여유롭게 먼 길을 갈 수 있을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법정(法頂)스님이 단순화된 삶의 행복을 틈만 나면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삶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데도 확실히 기술의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의 단순하고 경쾌한 차림이 처음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의 가방에 든 복잡하고 무거운 내용물과 비교되는 것처럼.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자루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하고, 예수님은 파견되는 열 두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복잡하고 견디기 힘든 삶의 일상으로부터 작으나마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정리의 기술을 나름대로 쌓아야 하며, 그 기술의 가장 큰 요체는 뭐니 뭐니 해도 버리고 비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버려야할 대상들은 꼭 우리 주변의 사물에 한정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창고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케케묵은 욕심, 헛된 욕망, 누구에 대한 미운 감정, 원망, 지난날에 대한 후회, 정죄의식, 부채의식, 비교의식, 질투, 시기, 근거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매일의 삶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들을 정리하고 일부나마 솎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고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피아노를 치우고 난 다음에 저는 더 많은 것을 얻었읍니다.
이제까지 피아노에게 빼앗겼던 귀중한 공간과 함께 찾아온 아침 형 인간으로의 변화는 저에게 눈에 띄는 삶의 여유를 가져다주었지요.
많이 비우면 많이 얻게 된다는 옛 선인들의 말씀을 본받아 앞으로는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의 창고를 비우고 정리하는 연습을 시작하렵니다.
지난번 사순특강 때 아브라함에 대해 강의하시며, 우리 신부님께서도 비우고 정리하는 일의 어려움과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지요.
2006. 3. 13. 월요일
윤여선(다니엘)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