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정리하기

2006. 3. 13. 오전 10:5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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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지난달에는 때 이른 봄맞이 청소를 하면서 오랫동안 내리지 못했던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큰일을 치렀습니다.

삼십년 가까이 우리 가족과 함께하면서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눴던 피아노를 다른 집으로 이사 보낸 것이지요.


옅은 황백색의 우아한 빛을 발하는 그 피아노는 내세울만한 이렇다 할 가구가 없는 저희에게 오랜 세월동안 자존심을 살려주는 역할을 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걸 큰 자랑으로 여겨 왔었구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차츰 그 피아노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더구나 덩치가 커진 이후에는 아이들조차 피아노 앞에 앉는 일이 드물게 되면서부터는 언제나 오연한 자세로 안방 한구석에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곱지 않은 눈길이 자주 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그것을 다른 집에 이사보내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날, 제가 퇴근해 집에 오니 벌써 피아노는 어딘가로 떠나가고 방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더군요.


그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저희 가족의 자유를 제한하던 애물단지가 사라진 후련함을 느꼈던 것은 저의 무정함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던 공간의 넉넉함이 저의 마음에 그대로 여유롭게 전해져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날의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주위에 있는 것들을 비우고 정리하는 것이 저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와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가를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로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아침일과를 준비한 후 여섯시 오십분에 집을 나서 출근하는 ‘아침 형 인간’으로 바뀐 생활을 해오고 있으니까요.

새벽미사도 나가야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삶의 여유 없음을 한탄 하곤 하지요.

우리의 주변, 또는 우리의 내부에 널려져 있는 모든 문제들로 인하여 우리가 그러한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든,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든 이러한 작은 부분들부터 정리해 나감으로써 큰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본의 ‘니시무라 아키라(西村 晃)’는 그의 ‘정리의 기술(整理の技術)’이라는 책에서 주변정리와 오래된 것들 버리기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습니다.

그는 주위에 널려있고 우리가 매일매일 접해야하는 구체적인 사물만이 아니라 생각(사고)과 시간과 심지어는 인간관계마저도 서서히 정리해 나갈 것을 권고합니다.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림으로써 생활의 공간을 여유 있게 확대하라는 것이지요.

‘필요한 것을 하나 찾을 때마다 3개씩 없애라.’ ‘서류함의 75퍼센트가 차면 덜어내기 시작하라’고 그는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진 자와 가벼운 트레킹 차림으로 걷는 자중 누가 더 지치지 않고 여유롭게 먼 길을 갈 수 있을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법정(法頂)스님이 단순화된 삶의 행복을 틈만 나면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삶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데도 확실히 기술의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의 단순하고 경쾌한 차림이 처음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의 가방에 든 복잡하고 무거운 내용물과 비교되는 것처럼.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자루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하고, 예수님은 파견되는 열 두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복잡하고 견디기 힘든 삶의 일상으로부터 작으나마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정리의 기술을 나름대로 쌓아야 하며, 그 기술의 가장 큰 요체는 뭐니 뭐니 해도 버리고 비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버려야할 대상들은 꼭 우리 주변의 사물에 한정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창고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케케묵은 욕심, 헛된 욕망, 누구에 대한 미운 감정, 원망, 지난날에 대한 후회, 정죄의식, 부채의식, 비교의식, 질투, 시기, 근거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매일의 삶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들을 정리하고 일부나마 솎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고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피아노를 치우고 난 다음에 저는 더 많은 것을 얻었읍니다.


이제까지 피아노에게 빼앗겼던 귀중한 공간과 함께 찾아온 아침 형 인간으로의 변화는 저에게 눈에 띄는 삶의 여유를 가져다주었지요.

많이 비우면 많이 얻게 된다는 옛 선인들의 말씀을 본받아 앞으로는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의 창고를 비우고 정리하는 연습을 시작하렵니다.


지난번 사순특강 때 아브라함에 대해 강의하시며, 우리 신부님께서도 비우고 정리하는 일의 어려움과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지요.


 

                                                2006. 3. 13.  월요일 

 

                                                                             윤여선(다니엘) 올림

          

댓글 15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00

    현 생활과 관련하여 좋은 글을 써주셨네요 우리집 피아노도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나 실천을 못하고 있는데 생각해 보아야 겠네요 글 감사 합니다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01

    그리고 책꽂이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한바퀴만 돌고 나면 길이 있을텐데요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03

    저는 큰 것은 아니지만 음향실 등 기타 성당에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아침에 운동을 가면서 유심히 보아두었다가 재활용 했던 것들이 많았어요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05

    그리고 이제 이곳 시샵은 제가 아니지만 신부님 강론후 이 카폐 공지사항으로 유인물까지 만들어서 홍보 하신 것 인상 깊었어요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06

    그리고 왜 교육 분과장님이 홍보를 하셨을까 무척이도 고맙기도 하지만 왜? 그러셨을까 궁금하기도 하더라고요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10

    알았어요 그러나 그 피아노는 좀 눈물겨운 우리 살림의 기호 1번인데 어떻든 가족과 상의해서 정리 해야죠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14

    버리지 마시고 기증하세요~ 어린이가 있는 집에 아마도 누군가는 그 피아노가 절실히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흥백산 나눔터의 "재활용품 신고서나 아니면 초등학교 어린이 미사가 있는 토요일에 학부모님들이 많이 함께하시니 그 때 필요하신 분 가져가시라구요~" 아셨죠! 바오로 형제님!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15

    답 글이 위 아래로 왔다갔다하네 ㅎ ㅎ ㅎ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15

    끼어 드는게 아니라 동시에 나눔을 한거라니까요~~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17

    저두 신부님 특강 들은 후 저의 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했답니다. 사순을 지내며 많은것을 느끼게 해 주는 글입니다..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20

    덕분에 회원이 3명이나 늘었어요 30번 홍보하면 +90명 제가 목표하는 200명 회원을 채울수가 있을텐데요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23

    활성화된 카폐 회원을 보니까 200여명으로 2~3군데 뿐이더라고요 이제 교육분과장님께서 잔잔한 글을 써 주시면서 노력해 주시니 곧 되겠죠 화이팅! 입니다

  • 2006년 3월 13일 오전 11:24

    그리고 제목도 참 잘 선정을 하셨어요 "비우고 정리하기"

  • 2006년 3월 13일 오후 4:49

    <img src=http://kr.img.blog.yahoo.com/ybi/1/9d/a0/ing89898/folder/20/img_20_28416_15?1142091000.jpg>

  • 2006년 3월 14일 오전 7:54

    다니엘분과장님 사순절에 다이엘 분과장님의 "비우고 정리하기'의 제하와 실천이 가슴에 와 닿네요. 저도 딸을 시집 보내려면서 생각하는 바가 많습니다. 요즘 시간이 너무 바빠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묵상거리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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