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부터 꾸준하게 해온 묵주기도는
나의 혼란과 방황 속에서도 삶을 지탱시켜주는 힘이었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은 정말로 힘이 들었습니다.
마저 해나가기가 말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54일을 또 마치리라 또 다짐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는 환희의 신비 였습니다.
환희의 신비 5단을 돌리면서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저 의무처럼 하기도 했었고 주문처럼 외우기도 했었습니다.
묵상을 진지하게 하던 기억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것도 오래전의 일들이었습니다.
다시 성모님과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오랜 만의 반가움이었습니다.
환희의 신비 제1단: 마리아 예수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뜬금없이 처녀에게 아이를 낳으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얼마나 난감했을런지 상상합니다.
제가 오십이 되어서 건강검진을 할때마다 자궁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엄중한 권고를 세번이나 받았건만
조용히 묵살했다가 며칠전 산부인과라는 곳에 생전 처음으로 가서
자궁경부암 검사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기분 정말 더러웠습니다. 그런데 애를 낳으라니..
그것도 아멘 하면서 순종했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살아가면서 아멘 해야하는 순간이 너무너무 많다는 것을 실감하니까 말입니다.
환희의 신비 제2단: 마리아 엘리사벳을 찿아보심을 묵상합시다.
사실 마리아라고 헷깔리지 않았을리 만무합니다.
나와 같은 황당무계한 처지의 사람을 찾아서 주님의 신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달걸이가 끝난 엘리사벳에게도 잉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해보고
만나서 주님의 하신 일들을 나누어 보고 싶었겠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야 삶을 나누고 삶을 확인하고 살아갑니다.
자신과 다른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가끔은 정말로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정말로 더 황당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저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그렇게 삶을 나누는 사람들은
바로 그 분을 아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분을 아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저 말로 믿는다고 해서 아는 사람일까요?
그 분을 살아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겠지요..엘리사벳이나 마리아처럼..
환희의 신비 제3단: 마리아 예수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정말로 마리아는 예수를 낳았습니다.
묵주기도 5단은 지루하지만 3단은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하면서 보냅니다.
항상 3단은 클라이막스입니다.
"예수를 낳았다."
그 시대에는 돌맞아 죽을 일..처녀가 애를 낳다니..그것도 남자와 자지도 않고서..
그런데 자신의 몸에서 열달을 채워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해산을 했습니다.
아기를 낳고 젖을 물렸습니다.
나를 희생하고 나를 써서 나를 바쳤습니다..
내가 뭐가 되더라도 주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일단 순종하면서 따라갔습니다.
몸매도 망가졌을 것이고, 명예도 망가졌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였습니다.
늘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재면서 망설이는가?
늘 무엇 때문에 그렇게 두려워 하는가?
받아들이라..그리고 살라..그렇게 나의 삶을 써나가라고 환희의 신비 3단은 이야기해줍니다.
환희의 신비 제4단: 마리아 예수 성전에 드리심을 묵상합시다.
그렇게 별나게 낳은 아이였지만,
그렇게 희생해서 낳은 아이였지만,
마리아는 자기가 뭘 어떻게 하려들지 않고서 예수를 관례에 따라서 성전에 드리고
다소곳이 물러섭니다.
하느님께 예수를 주신대로 남들의 아이처럼 예수도 성전에 드립니다.
예수도 다른 아이처럼 키우도록 하느님께 바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이니까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져서 예수에게 인호라도 박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당연하게 남들처럼 성전에 드리고 당연하게 남들처럼 성전에서 하느님께 예수를 바칩니다.
별나게 굴지 말아야겠다.
평범함이 진리라는 것을 늘 깨닫기를 스스로에게 가르칩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구는가..누구나 걸어가는 길로 나도 가야지..마리아도 예수를 성전에 드리셨는데..생각합니다.
환희의 신비 제5단: 마리아 성전에서 예수를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그러나 결국 마리아는 성전에서 토론하고 계신 예수를 찾아냅니다.
잃어버려서 속을 썩였더니 성전에서 의젓하게 토론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예수..어머니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모르셨습니까?
난해한 예수..내가 낳은 아들인데도..모를 예수
예수에게는 예수의 길이 있는 것..
마리아는 하느님의 도구로서 자신의 몫을 하고는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을 때,
기쁨에 넘쳐서 아들이 반갑다기 보다는
낯설기도 했을 것이고 자신을 넘어선 난해함에 놀랐을 것이고
그러나 또 받아들입니다. 마리아는..예수를..
자신의 몫을 다하고 예수가 자신이 알 수 없는 경이로운 토론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들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바라보면서
또 받아들입니다.
그것도 기쁨에 넘쳐서
환희의 신비는 삶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주어지는 삶을 주어지는대로 살아가는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주먹구구를 넘어선 신비한 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주님을 알고 그 분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되는 것..
그 분의 삶이 내 안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트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9. 5.16.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