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삶(2/12)

2005. 2. 12. 오전 8:02:59

글자
2005년 2월 12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제1독서 이사야 58,9ㄴ-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서 멍에를 치운다면, 삿대질을 그만두고 못된 말을 거둔다면,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 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 준다면,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의 어둠이 대낮같이 밝아 오리라. 주님께서 너를 줄곧 인도하고, 메마른 곳에서도 배불리며, 뼈 마디마디에 힘을 주리라. 너는 물이 항상 흐르는 동산이요,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줄기, 너의 아들들은 허물어진 옛 터전을 재건하고, 오래오래 버려두었던 옛 터를 다시 세우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수축하는 자', '허물어진 집들을 수리하는 자'라고 불리리라.
나의 거룩한 날에 돈벌이하느라고 안식일을 짓밟지 마라. 안식일은 '기쁜 날', 주님께 바친 날은 '귀한 날'이라 불러라. 그날을 존중하여 여행도 하지 말고, 돈벌이도 말고 상담 같은 것도 하지 마라. 그리하면 너는 주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리라. 내가 너를 이끌어 산등성이를 타고 개선하게 하며, 너의 조상 야곱의 유산을 먹고 살게 하리라."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시다.


복음 루가 5,27-32
그때에 예수께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하셨다.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
레위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를 모셨는데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들과 그 밖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하고 트집을 잡았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어제 아침,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아침부터 화가 난 사연은 다음과 같답니다.

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화장실과 주변 청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화단 구석에 종이쪼가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 종이를 주우러 화단 구석으로 가는 순간, 저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들이었습니다. 왜 쓰레기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다가 숨겨두었는지요? 종이들은 물론, 담배꽁초까지 화단 구석구석에 잘 보이지 않게 숨겨 두었더군요. 특히 먹다만 음식까지 있었는데, 그 음식 쓰레기는 부패되어서 심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살짝 삐져나온 종이쪼가리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나머지 숨겨진 쓰레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이 구석에 잘 숨겨진 쓰레기들을 주우면서 괜히 화가 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쓰레기들을 숨겨서 버릴까? 오히려 그냥 잘 보이는 곳에 버렸다면, 제가 주어서 쓰레기통에 잘 버릴텐데요.

하긴 사람들이 어떤 잘못이나 죄를 범할 때는 드러나게 하지 않지요. 즉, ‘나 이런 잘못을 지금부터 할꺼다.’라는 식의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누군가 볼까봐 몰래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공중도덕을 잘 지킵시다.’ 라는 말을 하면서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공중도덕을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게되던지요.

이런 측면을 따지다보니, 예수님께서 당시의 죄인이라고 알려졌던 사람들을 받아주시고 대신 자신은 깨끗하다고 말하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위선자’라고 꾸짖으신 이유를 좀 알 것 같습니다. 쓰레기가 밖에 드러나 있으면 청소하기가 쉬운 것처럼, 자신의 죄가 드러나 있으면 고치기가 쉬운 법이지요. 하지만 반대로 쓰레기가 구석에 숨겨져 있으면 몇 날 며칠을 그 구석에 둘 수밖에 없는 것처럼, 죄 역시도 숨기면 숨길수록 고칠 수 있는 기회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은 겉으로는 그럴싸하고 올바른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죄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의 기회를 스스로 집어던지는 그들을 예수님께서 좋아하실 이유가 없었지요.

바로 이런 차원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세리들과 창녀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주님 앞에 드러냈기에 개선의 여지가 많았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확 바뀌기도 했고요. 이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그래서 이제는 세속적인 모습들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흐뭇하셨을까요? 따라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오늘 복음의 장면은 이런 측면에서 깊은 이해가 갑니다.

이제 자기 자신의 죄를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남의 죄를 따지는데 급급한 어리석음을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이 되기보다는,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죄인 세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쓰레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서 버리지 맙시다. 청소하기 힘듭니다..



나무의 삶(김재호)

벌레들이 집을 짓고 사는
썩은 나무 밑동에
비 내린 뒤
앙증스러운 버섯이 피었습니다

나무는 저렇게
살아서 절반
죽어서 절반의 삶을
사는 걸까요?

우리들의 삶도 혹시
저렇게 절반씩인가요

이승에서의 성공도
아무리 큰 실패도
크게 자만하지도
크게 절망할 필요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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