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잔인할지라도…

2010. 10. 8. 오후 9:18:18

글자


밀레(1814-75)   만종(L'Angelus)   캔버스에 유채 55.5×66㎝  1857∼1859년  루브르박물관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07년 9월의 말씀

삶이 잔인할지라도…

아마도 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밀레의 만종!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그림이라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고 나도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있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게 하곤 했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 노을 지는 저녁,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 하루의 힘겨운 노동 후 겸허히 하루를 바치며 기도를 바치는 부부, 삶의 장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림이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부부 앞에,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내 앞에 놓인 바구니에 담긴 것이 처음 밀레가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감자나 어떤 농작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 부부의 사랑하는 아기, 죽은 아기였다는 것입니다.  밀레의 친구가 죽은 아기의 그림을 그대로 두어서는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낄테니 농작물로 바꾸라고 강하게 이야기하였고, 밀레는 그 친구의 말을 받아들여 죽은 아기 대신 감자를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고 그림을 보았을 때 사실 좀 당황스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노을진 저녁 들판을 배경으로 서있는 부부가 사실은 죽은 아기를 묻기 전 기도를 바치고 있는 장면이라니 혼란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그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전혀 다른 이 두 장면이 하나로 겹쳐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지 나이 든 부부가 아닌 것으로 보아 첫아기일지도 모를 아기를 잃고, 땅에 묻기 직전의 부부!  가난과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그들에게 환한 희망을 던져주었을 그 아기의 싸늘한 시체 앞에서도 그들의 자세에는 한없는 고요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고통의 울부짖음으로 무너지고 일그러진 모습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다만 아내의 꼭잡은 기도하는 손과 깊이 숙여진 머리에서 그 고통의 정도가 느껴져 올 뿐입니다.  깊은 고통 속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 부부 뒤로 해는 이미 넘어가고 붉게 물든 노을로 삶의 잔인함과 처연함이 더 짙게 배어나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풍경 위에 우뚝 선 두 사람의 곧은 자세는 어떤 고통도 짓누르지 못할 더 고귀한 무엇을 감지하게 해줍니다.
고통 속에서의 평화!  이 고요함 속에 불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피부로 전해져 옵니다.  그 큰 고통마저 녹이는 불, 깊어가는 저녁, 깊어가는 겨울에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불을 지닌 이들이 있습니다.  


        간절함은 성령의 은총
        오롯함은 주님의 현존
        강렬함은 사랑의 고양
        혼돈의 수렁 속
        소용돌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정화.


        나를 잊고 주위도 잊어버려
        주님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으니
        나는 나로되
        주님의 사랑과 뜻이 밀물처럼
        차곡 차곡 나를 채우네.


        타오르는 흰불,
        생명보다 귀한 불,
        태워버림 없이 타올라
        약하디 약한 육을 주님과 하나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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