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밤 10시 인천공항을 떠나 새벽 2시 반 곤명에 도착, 잠깐 눈을 붙이고 1시간을 날아 중전의 샹그릴라 공항에 내려 앉습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도에 고소증 약을 먹지않은 딸아이는 공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노란 위액까지 모두 토해냅니다. 고소증은 심한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지만 이것도 이곳 여행의 과정이니 적응하는 수 밖에요. 그래도 약이 좋으니 다행이지요.
샹그릴라....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이상향 샹그릴라는 "마음속의 해와 달" 이라는 뜻을 가진 티벳어라고 합니다. 옥룡설산과 하파설산 사이에 폭 쌓인채 야생화가 가득 핀 넓고 푸른 초원, 그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들, 햇빛에 반짝이며 흐르는 금사강, 티벳불교 사원인 송찬림사를 중심으로 평화로이 펼쳐져 있는 도시와 마니차를 돌리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며 비록 이곳이 소설속의 무대는 아니지만 샹그릴라라는 말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중국 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곳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도로공사를 벌이고 있어서 미리 오길 참 잘했다는 마음입니다.
온 몸을 흔들어대는 비포장도로를 Jeep을 타고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매리설산으로 이동합니다. 얼마전부터 마방들이 말을 끌고 지나던 차마고도의 많은 구간이 소형버스가 지날 수 있도록 넓혀져 있고, 이 길도 그 중의 한 구간으로 반대쪽에서 차가 마주오면 간신히 한쪽으로 비켜서 길을 내줍니다.
이때는 아래를 내려다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요.
12시간을 달려 비래사에서 하룻밤, 일찍 채비를 하여 라싸로 향하는 정통 차마고도 엔징鹽井을 오른쪽으로 두고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설산을 향해 첫걸음을 떼어 놓습니다.
6,740m인 매리설산은 티벳불교의 8대 聖山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산으로, 아직까지도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91년 일본의 경도대학원정대가 등정을 시도하였지만 눈사태로 베이스캠프에 있던 사람들까지 17명 전원이 몰살하였고, 그 후에도 여러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끝내 접근할 수 없는, 티벳인들에게는 성산 중의 성산으로 그들은 산속에 있는 神의 폭포에서 차가운 물을 맞으며 기도를 합니다.
6시간을 걸어 매리설산 입구 해발 3,300m 민가의 롯지에 숙소를 정하고, 다시 6시간을 걸어 매리설산 베이스캠프로해서 4,100m 氷湖에 오릅니다. 숨은 턱에 차오르고 발이 천근이지만 매리설산 빙하의 위용과 온 산을 뒤덮은 라리 구라스와 붓꽃, 철쭉, 찔레꽃,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야생화에 호사를 하면서도 가끔씩 우뢰와 같은 눈사태 소리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이 거대한 자연의 경외로움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가벼운지요.
티벳과는 달리 이곳은 4,000m가 넘는데도 원시림이 꽉 차 있어서 설산과 어우러져 푸르른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더 하고, 곳곳에 만국기처럼 길게 매달린 타르쵸가 펄럭이며 그들의 기도를 바람에 실어 하늘로, 하늘로 날려보냅니다. 이곳 마을은 산길 외에는 도로가 없어 걸어서만 들어갈 수 있어서 말이 모든 것을 실어 나릅니다.
생수 한병에 10배의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외지인을 볼 때마다 두손을 합장하며 수줍게 웃는 그들의 모습에서 씻지 않은 까만 얼굴과는 달리 때묻지 않은 맑은 순수함을 봅니다.
이곳은 이대로 남겨지기를 함께 바라며, 3일을 지내면서도 끝내 구름 속에 숨긴 채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매리설산을 뒤로 하고 호도협으로 10시간의 긴 이동을 합니다.
虎渡峽은 샹그릴라와 리지앙麗江 사이에 있는 좁은 협곡으로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레일, 페루의 마추피추 트레일과 더불어 세계 3대 트레일 중의 하나입니다.
호랑이가 건너 뛰었다해서 이름 붙여진 호도협은 길이가 16km에 달하고 옥룡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린 뿌연 물이 좁은 협곡에서 급류를 이루어 굉음을 내며 무섭게 흘러 금사강으로 해서 양쯔강에 이릅니다. 이 협곡길은 옛모습 그대로의 차마고도로 까마득한 낭떨어지 위에 구비구비 이어져 있어 자칫 발을 헛디디면 굴러 떨어질 것 같아 걷다가도 무심코 아래를 보면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마방들은 이 길을 지나 성도에서 라싸까지, 매리설산을 넘어 차와 소금을 싣고 지치고 긴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는 위험한 여행에 대한 한이 그들의 노래에 절절히 스며 설산 위로 메아리 치듯 퍼져 나갑니다.
그 길에 가끔씩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무서워 배낭을 무겁게 해서 지고 한 발자욱씩 힘든 걸음을 떼어 놓습니다. 그래도 험준한 협곡 기슭 곳곳에 나시족, 티벳족 등이 부락을 이루어 지나는 여행객들은 그 객잔에서 8시간 동안의 지친 발길을 쉬곤 합니다.
아침 일찍 해맞이를 하려고 객잔 테라스에 나가니 지구촌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지금까지 보던 해맞이와는 달리 설산은 산 위로 해가 뜨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뜨는 햇빛을 받아 산이 봉우리부터 금빛으로 변하며 아래로 내려옵니다. 마치 금빛 휘장을 드리우는 것처럼.....
그 광채에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을 토합니다.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던 지친 몸이 그래도 다음 날이면 가벼이 또 길을 떠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4시간, 못 다 걸은 호도협을 마저 걸어 나가 여강을 들러, 다시 곤명으로...... 9일 간의 여정을 마치고 내일 새벽 2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행은 사람을 매료시킵니다. 매리설산에서 돌아오던 날 12시간을 걷고 탈진하면서 힘든 여행은 그만 하리라 맘 먹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여행을 꿈꿉니다.
누가 아나요, 내년 이맘 때쯤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또 이렇게 긴 편지를 쓸게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