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향만 교수님의 글

2011. 2. 12. 오전 6:47:42

글자
사랑은
사랑은 관계에서 일어난다.
사랑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라면
일방적인 사랑은 사랑이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이 자신을 체험하는 관계, 내가 남을 체험하는 관계,
내가 신을 체험하는 관계이다.
관계를 인식하는 것은 사랑일까? 사랑은 지식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관계를 유지시킨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그토록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되찾은 짝으로 우리는 완전하게 되는가?
사랑으로 완전하게 됨이란 무엇인가?
오히려 실망하고 안주하고 쉬 식어버린다.
더 이상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가?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나르시스와 같은 자기 사랑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꾼다.
몸을 가꾸고, 지성을 가꾸고, 덕성을 키운다.
변하는 것에서 변하지 않는 것으로 점차 자신을 가꾸어간다.
자신을 사랑하는데서 자신을 새로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나타나고
다른 이에게 새롭게 나타나게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자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본다.
사랑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이고 발견이다.
내가 보려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자신을 보며 그 아름다움의 척도를 배운다.
사랑하는 사람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놓아둔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공감에서 일어난다.
 
사랑은 교감 가운데 일어난다. 성은 교감의 대화이다.
성은 육체적 인식의 절정이다.
손을 맞잡음과 포옹 가운데서도 신선하고 깊은
육체적 인식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인식은 육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랑은 내면에 깊은 신뢰를 구축하려하고
견고한 유대를 유지하게 한다.
 
 사랑은 실망과 절망 속에서 그 깊이를 알게 한다.
그러나 참 된 사랑은 후회함이 없다.
그 만큼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고통을 동반한다.
기대와 희망의 이면이 고통이다. 사랑은 그 둘을 포용한다.
사랑은 상대를 자유롭게 하나 방임은 아니다.
사랑을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법을 배운다.
새로운 사랑의 단계를 체험한다. 조건없는 상호성이 나타난다.
 
이때 사랑은 사람을 낳아준다.
상대를 낳아주는 고통을 두려워한다면
사랑의 관계는 성숙할 수 없다.
낳아주는 자만이 상대를 관조할 수 있다.
여기서 상대를 바라보는 일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된다.
상대가 완전히 자신으로 보일 때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모든 존재는 나를 반영하고 있다. 나와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모든 것이 내 앞에 존재하지만
관계하지 않으면 현존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존재성을 요구하지 않고 현존성을 요구한다.
사랑은 상대에게 현존성을 부여한다.
현존성 안에서 생명을 나누고 세계를 창조한다.
사랑은 사람을 낳고, 자연을 낳고, 세상을 낳는다.
사랑의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새롭게 낳아주는데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댓글 1

  • 2011년 2월 13일 오후 12:37

    마음에 와 닿는 좋은글입니다. 오늘 울지마 톤즈 영화 다운받아 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