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2010. 2. 4. 오후 1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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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억울합니다. 바른말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역사 안에 수없이 많습니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한마디’ 했다가 불이익을 당한 사람을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견된 죽음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앞날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숱한 억울함을 체험합니다. 억울함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는지요?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탓입니다. 현실 역시 언제나 부정확하고 엉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세상은 본디 ‘그런 곳’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공평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생의 억울함을 받아들이면 세례자 요한을 ‘닮는 것’이 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내려졌던 축복이 그 사람에게도 분명 주어질 것입니다.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에게 원한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는 ‘악연’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악연도 이끄심이었던 것입니다. 인연에 담긴 신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남의 것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것에 대하여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Praise to the Lord, the Almighty - St. Philips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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