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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고향에 오셔서 설교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출신을 떠올리고는 능력을 의심합니다.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우리 동네에서 목수 일 하던 그 사람의 아들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본모습에
다가가는 데에 실패합니다.
그들은 기적의 주님을 만나고 접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수의 아들이란 생각 때문에
‘기적의 힘’을 깨닫지 못합니다.
편견 때문입니다. 한쪽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 편견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에만 매달리다가
그분의 영적 모습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을 통해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은 믿는 이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벌주거나 징계를 가하기 위한 기적은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편견을 뚫지 못하는 믿음을 애석하게 여기셨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기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그렇건만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주님께서 주셨기에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편견’을 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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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살아계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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