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은 요한의 어머니입니다.
평생 아이를 가지지 못하다가 늙은 나이에 그를 잉태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의 아이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요한의 탄생을 의심했다가 ‘천사의 보속’을
받은 것임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요한의 할례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요한’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 역시 요한이라고 답합니다.
말을 하지 못했기에 ‘서판’에 그렇게 썼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랍니다.
그 순간 즈카르야는 보속에서 풀려나 말을 하게 됩니다.
즈카르야는 벙어리였을 때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그는 아들의 탄생을 ‘불가능한 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주셨습니다.
‘임신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아들의
탄생을 기적으로 여겼을까요?
그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비로소
‘아들을 주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말문이 트였습니다.
첫 발언이 아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요한’이라는 이름에 찬동합니다.
요한은 ‘새로운 삶’을 알리려
주님께서 보내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벙어리로 살았던 짧은 시간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고통과 부딪혀야 깨달음을 만납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