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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은 일하기 싫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세리와 창녀들 역시 ‘율법 생활’이 싫었지만, 마음을 바꿉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맏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포도밭에 가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가지 않았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은 말만 앞세웠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에 충실했지만,
마음과 행동은 ‘형식주의’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신앙인은 많습니다.
‘잘 살고 있다는’ 사람 중에도 많습니다.
“예.” 하고 대답은 하지만, 실천에는 소극적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를 실제로 ‘일하러 간’ 맏아들에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그들을 율법에서 제외시키고, 상종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현격한 차이입니다. 주님께서는 ‘현실’을 보시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과거’만 보고 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세리와 창녀들처럼 삶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변화를 시도해야 은총이 함께합니다.
맏아들은 싫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러기에 순종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변화의 삶을 시작해야 할지 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과 함께’ 답을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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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가톨릭합창단 - 주여 임하소서 - Lowell M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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