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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카르야 사제에게 아이가 없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제비뽑기로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게 된 것도 섭리였습니다.
그가 천사를 보고 놀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이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릅니다.
젊은 시절, 그는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것에 대한 절망도 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그는 천사를 만나 아이를 갖게 될 것을 알게 됩니다.
천사는 얼마나 장황하게 말하는지요?
그만큼 주님께서도 기다려 오셨던 일입니다. 그런데 즈카르야는 항변합니다.
‘그토록 청할 때는 침묵하시더니, 이제 주신다는 것입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즈카르야는 ‘인간적 계산’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을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사는 그를 질책합니다. 그리하여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라는 ‘보속’을 줍니다. 그제야 즈카르야는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말은 잃었지만, 깨달음은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시련을 견디어 냅니다. 아들 요한을 위해 참아 냅니다.
우리 역시 보속이라는 느낌이 오면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깨달음에 닿을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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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ound of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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