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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내일 독서의 앞부분을 이어서 묵상하면 두 부분의 대조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예찬과 영광을 거부합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사람 모습으로 나타난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오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오로의 믿음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앉은뱅이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경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신자들 사이에서 환대와 존경을 받곤 합니다.
하기야 성경도 훌륭한 원로들, 특별히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애쓰는 이들은 존대를 받아 마땅하다고 권고하기도 합니다(1티모 5,17 참조).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환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의
경우에는 환영을 받기보다는 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서 쫓겨났고, 이코니온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으며, 지금 리스트라에서는
환영을 받지만 내일 독서에서는 이코니온에서 온 사람들이 그를
돌로 치고는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릴 것입니다.
이때에 바오로는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면서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합니다.
이것은 믿음과 신뢰심을 갖고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시고 그를 지켜 주실 것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진리 안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며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과 시련을 당할 때, 주님의 말씀이나 시편의 한 구절,
또는 어떤 가르침 등이 마음에 번쩍 떠오른다면,
그것 역시 바로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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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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