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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분들은 많습니다.
요셉이 목수였다면 베드로는 어부였고 바오로는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 성인 가운데 특별히 요셉을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정했을까요?
요셉 성인과 다른 모든 성인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요셉이 예수님의 양아버지였다는 점입니다.
오늘 성무일도 아침 기도 ‘즈카르야의 노래’ 후렴은,
“목수로서 충실히 일하신 성 요셉은
노동자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고 그를 칭송합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을 비롯한 여러 교황의 수많은 근현대 회칙들은,
요셉의 모범을 본받아 노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과된 과업을 완수함으로써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순결한 배필이며 우리 구세주 예수님의 양부이지만,
요셉은 그 당시 아주 흔한 직업을 가지고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성가정의 울타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문맥상 존경이 담긴 표현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목수의 아들’, 노동자이신 그분에게서 지혜와 기적의 힘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며 의아하게 여겼고,
더욱이 목수의 아들이 예언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인물로 알려진 예수님께서는
‘지혜와 기적의 힘’을 지닌 분이셨고,
스스로 당신 자신을 ‘예언자’라고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러나 ‘목수의 아들’이며 ‘예언자’이신 예수님은
그저 여러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귀족이나 사두가이나 율법 학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인 목수의 아드님을 통해서 당신의
‘지혜와 기적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하심은 놀랍기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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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Father, O My Fat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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