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 9. 15. 오후 11:42:30

글자
 

오늘 1교시는 예언서 수업이었지요.

쉬는 시간에 책을 가지러 사물함으로 갔는데,

원장 신부님 수업에 관련된 책이 두 권,

성문서랑 후기 예언서 중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런 제게 누군가가 성문서라고 일러주신 바람에

전 또 아무 생각 없이 성문서 책을 들고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곧 수업 시작종이 울렸고, 원장 신부님이 들어오셨는데 133쪽이라 하시는 거 같았습니다.


예레미아에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지금 제 기억은 백지상태입니다.

오늘따라 웬일인지 원장신부님 설명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질 않대요.

제 앞에 앉은 세실 자매님은 노란 형광펜으로 뭔가 중요한 부분을 번쩍번쩍 표시해가며

초롱초롱히 따라가는데,

전 세실자매님의 그런 모습만 눈에 들어올 뿐

당체 책의 내용은 귀에, 눈에 들어오질 않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딜 하는지 얼마 못가 놓쳐버렸고,

전 세실자매님한테 몇 페이지냐고 물었습니다.

117쪽???이라시더군요.


‘내가 잘못 들었나? 아깐 133쪽이라 한 거 같았는데...

그래, 잘못 들었나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책을 들여다봤는데,

원장신부님 말씀이 다시 외국어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책을 들여다봐도 어디에 무엇을 하는지 다시 모르겠는 거예요.

성서책 읽을 때만 열심히 따라갈 뿐...

할 수 없이 세실 자매님한테 재차 물어보려고 세실 자매님을 조곤조곤 불렀는데

세실 자매님, 이 번엔 들은 척?도 안 하십니다.


“세실..”

“......”

“세실..”

“.....”

“세실.. ”

“.....”

“(버럭)세실 자.매.님!!!”

“어?”

“몇 페이지예요?”

“123쪽”

“아~”


다시 눈에 힘을 팍 주고 책을 보는데..

아무래도 원장 신부님 말씀과 책 내용이 따로 노네요.

‘이상하다?’ 생각하고 거듭,

“세실...?” 부르는데, 이 번엔 세실 자매님이 책을 들어 보여주시더군요.

 

‘허걱...’

그런데, 웬일입니까?

세실자매님이 들고 계신 책은 하늘색의 ‘후기 예언서’구요.

제 책은 군청색의 ‘성문서’잖아요.

 

‘흐이그~... 바보~!’

뒤늦게 사태파악이 된 저...

벌떡 일어나 책장 쪽으로 가려는데,

제 옆 줄 라인의 2칸 뒤에 앉은 가타리나랑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빙그레~~~~~~

웃는 카타리나....

가 왠지 수상쩍다....

는 생각이 번개같이 제 뇌리를 스쳐지나가는데

“언니~~~” 이러면서 제게 책을 내미는 카타리나.

그 책을 딱 보는 순간...

세. 상. 에~

제 ‘후기 예언서’ 인 거 있죠?


‘이런 황당 시추에이션이 있나?

내 책인 거 알았으면 진작 줄 것이지 아니, 지가 왜 내 책을 보고 있대?’


수업 중이라 뭐라 따지진 못하겠고, 책만 받아 제 자리로 돌아와 앉았지요.

이제 제대로 된 책이 내 손에 들어왔건만,

수업 중에 신부님 말씀은 여전히 한 마디도 안 들린 채

가타리나에게 열만 받은 상태에서 그렇게 남은 수업시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1교시 마침종이 울렸네요.

열 받은 저.. 그러나 웃으면서... 가타리나한테 갔지요.


“야.. 그래도 그렇지. 내 책인 거 알았으면..” 하는데,

가타리나 왈.

“언니.. 수녀님이 책을 안 가져 왔길래

내 책 수녀님 주고 오늘 결석한 사람 책 볼 거라고 사물함에 갔는데,

언니 책 밖에 없더라구요.

언니를 보니까 언니는 성서책 펼쳐놓고 엉뚱한 책 보는 거 같았지만...“


이래저래 카타리나가 저보다 더 영리해서 생긴 일인데

웃을 수밖에요....


그래도 카타리나...

내가 너한테 열 내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야.

니가 니 책 수녀님 드렸단 말에 그 마음이 이뻐서

모든 화가 가라앉아 버리더라.


저의 멍청함으로 빚어진 이 황당 시추에이션으로

신학원들 몇몇 분들께 즐거움을 제공했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가 생각한 것은...


‘다니엘라.. 너 참 많이 변했다. 예전 같음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니 멍청함에 웃는 여유도 다 부리고 말이야.....‘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저 같은 열순이가 하느님 안 믿고 비신자로 그냥 살았을 거 같음

제가 속한 공동체는 늘 시끌벅적 분란 땜에 시끄러웠을 거라는 거...

아마 내 행동은 언제나 정당하고 남만 교묘히 씹어가며

못된 짓거리 꽤나 일삼고 살았을 거예요.

 

하느님, 저요...

당신 품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하다는 거 아시죠? ^_______^

쬐끔씩 쬐끔씩 성장해가는 제 모습이 전 스스로 대견해 죽겠습니다.

(그렇다고 뭐 하나 이뤄놓은 거 없이 지금 죽으면 안 되겠지만요...ㅋㅋ)
그래서요, 하느님...

내일도 내일 모레도

죽을 때까지 평생...

하느님 웃으실 수 있게 기쁨 안겨드릴 수 있는 당신의 딸로

늘 변화돼 갈 수 있기를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 1

  • 2006년 9월 16일 오전 12:25

    참 예쁘고 멋진 고백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의 빛으로서 많은 사랑을 펴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