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활절 신학원 미사에 참여하여 대표님으로부터 '이번 축제의 연극의 연출을 김현 요셉형제가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연극의 연자도 모르고 또 모두가 아시다시피 2교시에 오는 것도 빠듯한 봉급쟁이 생활을 하는 처지라 도무지 가능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고 당연히 마음 저 깊은 곳으로 부터는 이미 'No'라는 답변이 솟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회사일도 요즘 들어 부쩍 많아졌고 또 집안에 안 좋은 일도 있어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명동 성당 청년 단체의 말씀 봉사를 하는 일도 한계에 부딪혀 끙끙 대던 작금의 생활에 야간 신학원을 다니는 것도 상사의 눈치가 보이는 판에 축제 연극 연출이라는 테마는 마치 외국어 같은 낱말로 들렸습니다..
너무도 격이 맞지 않는 일인 셈이겠지요..
그러나 맘처럼 냉정하게 'No'를 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1학년때처럼 열정적으로 하실 생각들이 없으신것 같기도 하고 모두가 귀찮아 하시는것 같아 차마 'No'를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모두가 열정적으로 재미나게 하고 싶어 했다면 응당 거절했을테지만..
왠지 모두가 귀찮은 일처럼 느끼시는 것 같아 거절할 때를 놓치고 나니 이젠 걱정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회사에서, 집에서, 온통 어떤 시나리오로 어떤 연극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더욱 많이 받았던 지난 일주일간이었습니다..
성격상 완벽주의라 어쭙잖게 하는건 못참고, 이제와서 못한다고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갈등의 시간속에서 왜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겹칠때는 정신을 차리기 앞서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과 불만이 가득해 집니다. 결국 왜 그런지도 모른채 화가 나고 탈출구가 있기만 하면 다 쏟아 부어버리고 싶은 유혹도 느낍니다..
때로는 모든게 다 귀찮아 지고 의욕상실증에 포기하고픈 유혹도 느낍니다..
조용히 앉아 묵상을 하다가, 문득 어느 일본의 유명한 무사가 한말이 떠올랐습니다.. '배에 불이나고 바닥에 구멍이 뚫린 판에 적들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공격을 해와도, 한숨 잠을 청할수 있는 자가 진정한 리더이다..'
그 만큼의 여유와 배포라면 능히 어떤 일이든 처리해낼수 있다는 의미였던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글귀가 불현듯 떠오르며 두손에 힘이 들어 갔습니다..
결과는 그분께 맡기고 산적한 일들을 차분히 이성으로 다스리며 감정을 뒤로한채 꺾어 가자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내가 하려 했고, 그 결과 마저도 나의 영광으로 차지하려 했기에 모든것이 불만족 스러웠던 것이었음을 깨닫고 나서야 왜 그리도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나자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고 차근 차근 시나리오를 하루동안 써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해본적이 없기에 수준은 당연히 졸작이고 형편없을지언정, 기도하며 그분께 맡기고 나아가다보면 그 마음을 주님께서 헤아려주실것이란 믿음으로 한발을 내딛여 보았습니다..
집안일도, 회사일도, 내가 중심을 잡고 기도하며 묵묵히 이겨간다면 결국은 무릎을 꿇을 것이고 청년 모임도 주님의 뜻하신 바대로 일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음중에 확신할수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마치 연극 같습니다.. 더우기 낮에는 회사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밤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공부하는 모습 자체가 연극보다 더 연극같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 연극 같은 삶속에서, 나름대로 알맞은 역할과 지휘를 해보라고 부족한 저를 부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전문 연극인도 아니고, 또 연출가도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그 부족함을 모두가 합심해서 메꾸어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저 순명하며 더 어려운 일을 찾아 의지를 발하였기에 그 힘듦이 종국에는 기쁨으로 바뀔것이라는 희망이 듭니다.. 연극을 위한 연극이 아니라 우리가 기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서의 연극이 되도록 준비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에게는 별일 아닌 일인 작은 것이겠지만 지금 저에게는 바위 보다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무쪼록 달님반 동기 분들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도록 기도하며 준비해 가겠습니다.. 다들 어려우시겠지만, 저의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널리 이해해 주시고, 힘을 모아 함께 준비해 주셨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