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있는대로 풀어헤지고
머리엔 새끼줄 하나 동여 얹었다.
맨 앞에 나선 사람
어느 주검 고이 안고
그 뒤엔 지팡이 구부정 상주들이 따라간다.
아이고~, 아이고~.
애절한 울음소리가
조그만 주검위에 슬픔을 얹고.
길가 언덕배기
지팡이로 파내리고
오늘의 주인공 고이 묻는다.
아이고~, 아이고~.
울음소리 드높이고
사리지는 주검위에 눈물마저 뿌린다.
길가에 나딩구는
제비의 주검
동네의 조무래기들 장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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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 날 골목의 풍경입니다.
그 때 우리는 병아리만 죽어도 이렇게 슬퍼하며 장사를 지냈지요. 그러다 보니 때론 줄초상(? ㅋ)을 치루는 적도 많았습니다.
길가에 나딩구는 제비, 참새 등등의 주검들을 다 장사를 지내야 하니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골목이 시끌쩍 했지요.
그냥 묻어주는게 아니고 어른들의 장례식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느라 손으로 머리카락 마구 헝클어뜨려 산발하고 긴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머리 산발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날엔 울 엄마
"오늘은 또 무엇이 죽었는고?" 하고 웃으시곤 했다.
우리 어린 날엔 이렇게 작은 죽음에도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는데 요즘 사람들, 생명을 너무 경시하는 것 같습니다.
베란다에서 동물을 떨어뜨리며 구경하는 아이들,
동물을 학대하는 아이들, 차마 입에 담기초차 끔찍한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인간의 잔임함은 그 끝이 어디일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장사지내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동네에 누가 상을 당하면 집 앞에 등을 걸고
그때부터 동네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들어 품앗이 하면서 서로의 슬픔을 나누었지요.
지금은 영구차로 보내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는 상여에 태워 보냈습니다.
산모롱 길을 깃발 길게 늘여뜨리고 요령 흔들며 앞에서 구성진 목청으로 북망산 가는 길을 읊조리던 상여꾼들.
우리는 그것이 신기해서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가던 상여가 멈춰서기라도 하면 동네 사람들 " 망인이 무슨 한이 있어 저리 못가나?" 하면서 수근거리고
한참을 제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면 상주가 새끼줄에 돈을 찔러 넣고...
그시절 우리에게는 망자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 행렬이 큰 구경거리가 되곤 했지요.
그걸 보면서 우리들은 병아리 제비 참새들의 장례식을 치루었구요.
그런 풍습이었기에 동네 한 귀퉁이에는 상여집도 있었답니다.
그 때 전 그 상여집엔 귀신이 사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앞을 지날 땐 옆도 안 돌아보고 무작정 달아났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주 가끔씩 상여집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네요.
언제부턴가 그 풍경은 사라지고 장의사가 생겨나고
이제 상여의 긴 행열은 내 기억의 산모롱을 돌아 피아니시모의 여운을 남기며 아스라이 사라져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