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이 강함이다.
사라질 세상재화가 하늘나라에 쌓일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지고 싶고 잘살고 싶어한다.
약자 보다는 강자로, 천대받는 사람보다는 귀하게 대접받는 사람으로,
가난보다는 부자로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며,
또한 이러한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중심에 하느님이 얼만큼 차지하느냐이며,
하느님이 밀려난 세상적인 욕심들은 인간의 눈에 강하게 보일지라도
결국은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다.”(시편 1,4)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완벽하다는 그 이유로,
그 교만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지 못한다.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허약하고 보잘것없음을 깨달을 때에,
그래서 하느님이 아니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그분을 인식하는 은총을 얻는다.
이것은 물질적 풍요나 명예, 자존심...등
세상적인 것들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이며,
엄마품을 항상 그리워하는 젖 떨어진 어린 아기와 같이,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온전히 그분께 의탁해야만
세상속으로 찾아오신 그분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주는 영화로움에서 끝없이 죽어야하고
성화의 길을 걸어야하며 우리조상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아
매 순간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면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한 방법이
세상적인 영화나 지혜로움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였을 지라도
가장 약함인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해서
가장 강한 분으로 드러나셨으며,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이다.(1코린 1,21-25 참조)
예수님은 세상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예수님을 들어 올리셨듯,
예수님께서 바로 그 약함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셨으며,
당신 스스로 먹혀서 없어지는 신비를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에게도 낮아지는 자세,
자신을 죽이고 하느님을 드러내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인간적인 면에서 약하면 약할수록
영적인 면에서는 하느님의 능력과 힘이 드러나므로,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달게 받으며, 우리의 약함이
하느님 은총을 이 땅에 내려오게 하는 자랑이라고 말한다.(2코린 12,9-10 참조)
버려졌으나 선택된,
죽음의 세계로 내던져 졌으나 죽지 않고 살아계신 예수님처럼,
지금 우리의 처지가 세상가치로 볼때 약하고 비천하게 보일지라도
하늘나라에서 차지할 우리의 모습은
튼튼한 방비벽으로 둘러싸인 요새가 될 것이다.
“아기의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당신께서는 요새를 지으셨나이다.” (시편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