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 118

2006. 11. 29. 오후 5:41:51

글자
이 영화 보고도 축구에 관심 없을까?
국내 최초 스포츠다큐멘터리, 인천 유나이티드 일상 다룬 <비상>
   
ⓒ 이모션픽쳐스
# 장면 1

훈련에 앞서 인천 유나이티드 FC(이하 인천) 선수들이 골대를 옮긴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골대를 양 손으로 잡고 걷는 반면 세르비아에서 온 라돈치치는 손가락으로 골네트만 살짝 잡고 걸을 뿐이다.

임중용 "야, 라돈. 너 안 들어?"
라돈치치 "나…허리…아파…허리…."
임중용 "야, XX야. 들 때 다 같이 들어야지 너만 안 드는 게 어디 있어. 이 XX가 죽으려고."
라돈치치 "나…안 돼…허리…아파…."

# 장면 2

2005년 12월 4일 울산 문수 경기장에서 열린 2005 삼성하우젠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 전반 14분 라돈치치의 선제골로 앞서 가던 인천은 4분 후 울산 현대 호랑이 소속 최성국에게 동점골을 허용한다.

그런데 인천 선수들이 주심을 붙잡고 격렬히 항의한다. 최성국이 핸들링 반칙을 범했다는 것. 여기에 주장인 임중용이 빠질 수없다. 그는 결국 한 인상 쓰며 심판을 향해 소리 지른다. "이 XX놈아"


27일 용산 CGV에서 <비상> 시사회가 끝난 후 열린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인천 임중용은 쑥스러운 듯 마이크를 잡고는 한 마디 했다.

"제가 원래 그렇게 욕 잘하는 선수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유독 제가 욕하는 것으로 나와서 이것 참…. 저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에요."

좌중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 임중용 선수의 말처럼 이 영화에서는 선수들이 욕을 내뱉거나 얼굴을 붉히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연출이 없는 다큐멘터리기 때문이다.

장외룡과 인천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비상>은 창단 2년 만에 프로축구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간 인천 구단을 들여다 본 스포츠 다큐멘터리다. 이쯤해서 '난 축구에 관심 없어' '재미도 없는 K-리그 이야기?' 하며 이 기사 창을 닫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시라.

지는 데 이골이 난 선수들을 상대로 이제 막 감독에 오른 사람이 화이트보드에 전기리그 목표라면서 '7승 3무 2패'라 썼다. 다들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한 코치는 한숨을 쉬기까지 했다. 그런데 '헉!' 귀신같이 이 목표가 맞아떨어졌다.

▲ 다큐멘터리 속 인천과 포항의 경기 장면
ⓒ 이모션픽쳐스
또 있다. 2005 삼성하우젠 K-리그 플레이오프 인천-부산 아이파크(이하 부산)를 앞두고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산 선수들의 예상 움직임을 말했다. 감독이 비디오를 보며 예측한 부산 공격수의 움직임은 실제 경기에서 약속이나 한 듯 그대로 재현됐다. 이어 전반전 끝나고 쉬는 시간에 감독은 후반에 부산이 이성남을 내보낼 것이라며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역시 후반전에 부산은 이성남을 내보냈다.

<삼국지>를 읽으며 제갈공명의 지략에 감탄해 본 사람이라면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축구에서도 이런 지략이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 장외룡 감독의 이름도 중국인 이름 같으니 그런 분위기를 한층 더 느껴볼 수 있다.

지략에 관심 없다고? 그러면 휴먼 스토리는 어떤가?

"그 공은 네가 걷어냈어야지."
"안다고 알아. 나도 그러려고 뛰어올랐어. 그런데 공이 머리에 안 닿는 걸 난들 어떡하라고?"
"어휴 XX. 만날 이 모양이야. 언제 한 번 이겨보냐?"
- <비상> 중 한 토막


축구를 보며 "아유, 저 병신…" 하며 가슴을 친 사람 많다. 그런데 정작 해당 선수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알기란 어렵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이와 같이 선수들의 애타는 마음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지략'과 휴먼 스토리, 박진감이 녹아 있는 다큐멘터리

이밖에도 1984년 대우 로얄즈를 우승으로 이끌고도 사실상 팀에서 방출돼 일본으로 떠나야 했던 장외룡, 교체 선수가 없다 보니 실명 위기에도 연속 출전한 주장 임중용, 아빠가 보고 싶다며 컴퓨터로 편지를 쓰며 펑펑 우는 딸을 둔 김학철, 아내가 아이 셋을 낳는 동안 단 한 번도 자리를 지켜보지 못한 서동원, 하는 짓이 얄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괴짜 용병 라돈치치 등 감독과 선수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여기에 녹아있다.

혹 이도 저도 아니라면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어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쉬리>의 첫 장면 못지않게 "악" 소리 나고 "퍽" 소리 나는 인천과 수원 블루윙스의 경기 장면을 시작으로 흥미를 끄는 여럿 경기 장면이 이야기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 시사회에 참석한 인천 장외룡 감독과 선수들(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배우 오만석은 내레이션을 맡았다.
ⓒ 이준호
연출하지 않은 다큐멘터리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준 <비상>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월간 <스크린> 기자로 활약했던 임유철 감독이 인천 선수들과 1년여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낸 작품이다.

선수들은 제작진의 카메라에 익숙해져 자연스레 행동했고 이것은 그대로 논픽션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다만 한 사람 예외는 있었다. 그는 바로 장외룡 인천 감독. 장 감독은 "카메라가 따라 다녀서 불편한 것은 없었다"면서도 "가끔 임 감독이 연기를 부탁할 때는 어색했다"고 대답했다. 아니, 그럼 꾸민 곳도 있다는 말? 그러자 임 감독이 황급히 마이크를 잡고 해명했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린다. 축구 감독하면 선수가 못할 때 욕하기도 하고 때리기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장 감독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마디로 포커페이스였다. 더구나 경기가 끝나면 지건 이기건 '감사합니다' 하고 선수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니 카메라로 잡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약간 고뇌하는 표정 좀 지어달라고 한 것뿐이다."

자연스러운 것이 오히려 어색해 연출을 부탁해야 하는 사람 '장외룡'. 그와 그가 이끄는 인천 유나이티드 이야기는 오는 12월 14일 관객을 찾아간다. (펌글)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루카복음 21장 12-19절)

 

 

 주님, 당신이 저의 전부가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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