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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서 감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어느 경기든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됨에 따라 감독의 지략과 지도력이 경기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올 한해 스포츠계에서 뛰어난 지략과 지도력으로 팀을 이끈 감독을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K-리그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2004년부터 그를 지켜본 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반가운 소식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픈 이야기였다. "감독 맡을 여건이 될지..." 그의 거취가 결정된 바는 없다. 다만 그라운드에서 뿜어나오는 열정과 마찬가지로 펄떡거리는 가슴에서는 분명 그를 붙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다시 바라보면 그를 (선수 구성면이나 팀 살림면에서 훨씬 넉넉한) 큰 물로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그도 사람이고 팬도 사람이고 축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선수 구성면으로 봤을 때 교체할 선수가 별로 없다. 이는 단지 교체 선수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 일레븐의 경기력을 더 강하게 만드는 백업 멤버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인천 구단의 안종복 단장이 16일 "구단이 허락하는 재정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을 밝히며 재계약 의지를 천명했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2004년 후반기 감독 대행 역할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아쉽고 아깝더라도 떠나는 그의 등에 대고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죽하면 '감독을 맡을 여건이 되는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일까? 좀 비꼬아 생각하면 지금까지 그는 감독을 맡을 여건이 안 되는 팀을 이끌었던 것이다. 2005년 K-리그 통합순위 1위(챔피언결정전 준우승), 2006년 FA컵 4강 창단 첫 해(2004년)에 몸담았던 최태욱이나 알파이 외잘란(터키) 등 이름난 선수들도 떠나고 난 다음에 이룬 장외룡 감독의 대표적인 성과다. 특히 올 시즌에는 FA컵 도전을 통해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내세워 선수들은 물론 홈팬들의 마음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다. 거기에 정규리그 끝무렵까지 플레이오프 티켓 마지막 한 장을 놓고 '울산, 서울'과 함께 후회없는 승부를 펼친 것은 아쉽게 끝나버린 드라마의 여운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장외룡의 삶은 '축구' 인천의 장외룡 감독은 1999년 일본축구협회에서 주는 공인 S급 지도자 자격을 따냈다. 국내 지도자들 중에서 보기 드문 이력이다. 단순히 자격증만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J-리그에서도 베르디 가와사키(현 도쿄 베르디 1969), 콘사도레 삿포로 감독을 거치며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진정한 축구 인생은 인천 유나이티드 FC 수석 코치로부터 시작되었고 베르너 로란트 초대 감독에 이어 본격적으로 감독 역할을 맡은 2005년 그 꽃을 피웠다.
단지 한두 차례의 성과만 놓고 그를 최고의 감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팀을 알고 상대를 알고 뚜렷한 목표를 세울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쓰는 라커룸에 써 있는 낙서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기 7승 3무 2패, 후기 6승 3무 3패. 감독님은 점쟁이? 희한하네!"('파란-공포의 외룡구단', 중앙 M&b movie 중에서) 그는 선수들에게 목표로 제시한 것을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이룬 주인공이다. '철저한 분석가'로서의 장외룡 감독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다. 그가 쓰고 나오는 낡은 흰 모자에는 여러 글귀가 적혀 있다. '인내, 노력, 희생'이라는 세 마디도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지만, 'My Life is Soccer'라는 표현은 '감독 장외룡'을 대변해준다. 아울러 이 말은 인천 유나이티드 FC 홈경기 공식 프로그램 'The United' 앞 부분에 실리는 감독 칼럼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의 '비디오 테이프', 선수를 변화시키다 그는 컴퓨터의 다른 기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지만 비디오 자료를 만드는 능력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90분 경기 장면을 녹화해서 10분 분량의 비디오 자료로 압축하는 일은 감독으로서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훈련일지, 메모 기록 등 그의 방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열린 자료실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게 자신의 선수들 하나하나의 장단점을 보여줘 실제 경기에 녹아들도록 이끌며, 쉬거나 잠 잘 시간까지 쪼개어 상대팀 분석까지 해내기 때문에 축구를 '자신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까지 노종건은 상대 선수를 물고 늘어지는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공격 전개 능력은 보잘 것 없었다. 가운데 미드필더로 뛰며 상대 공격을 잘 끊었지만 자신의 발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공격이 거칠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감독의 세밀한 눈은 압축된 비디오 자료를 통해 한 선수를 몰라보게 성장시키고 있다. 2006년 시즌 노종건의 발끝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과감한 드리블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축구는 미드필더가 강해야 팀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그 덕분에 왼발잡이 김치우와 세르비아에서 데려온 드라간 믈라다노비치를 가운데 세워두고 제2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전남에서 데려온 장경진을 든든한 세 명의 수비수 중 하나로 안착시킨 점, 왼쪽 옆줄을 따라 주로 움직이던 수비수 김치우를 가운데 미드필더로 훌륭하게 바꿔놓은 점, 말썽꾸러기 라돈치치를 쓸 만한 골잡이로 길들인 점도 장외룡 감독의 지혜로운 눈과 헌신적인 노력을 잘 입증해주는 것이다.
장외룡의 '비상'
2.운동장에서
올해도 어느덧 한달여를 남기고 있습니다. 매년 느끼는것이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만이 행복을 누리지 않을까합니다. 비록 최근 값이 폭등하는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아서 슬퍼하거나,비관하지는 않을겁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이 있고,매주 즐겁게 축구를 같이할수 있는 형제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도...
오늘밤 11시30분에는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중계도... 그래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아래 글은 동아일보에서 퍼온글입니다. (펌글과퍼온글은 느낌이 다르다(아니다)) 생각하는 목요일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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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50대, 2006년의 초상]<6·끝>60세前 해야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은 2004년 자신의 40대를 회고하는 자전적 형식의 책, ‘나-구본형 변화이야기’를 발표했다. 그의 메시지는 “50대는 뭔가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 인생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40대에 승부를 걸라”는 것이었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005년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책을 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 이제는 50세 전후에 은퇴를 한다면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일 뿐이라는 것. 그는 우리네 인생을 번식기 50년과 번식후기 50년으로 이분해 바라보고 준비하라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1954년생 동갑으로 올해 52세다.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비슷한 이야기를 한 두 사람에게 ‘60세가 되기 전에 50대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 ○ 다른 사람을 돌아보라 구 소장은 50세가 된 순간부터 매년 실천할 10가지 계획을 세워 3년째 꾸준히 지켜 오고 있다. 그 핵심은 ‘사람에 대한 투자’다. 그는 우리네 인생에서 3가지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재정적 투자. 두 번째가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이고 마지막이 다른 사람에 대한 투자다. “50대는 사회생활의 정점에 놓여 있다 보니 재정적 투자나 자기 투자를 준비한 분이 꽤 돼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투자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40대까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달려온 분이 대부분이니까요. 50대부터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도우며 살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구 소장 자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돕기 위해 ‘개인대학’을 개설했다. 매년 10명가량의 연구원을 뽑아 2년 과정 동안 구 소장 자신이 터득한 변화경영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수업료는 없지만 매주 리포트를 내야 하고 졸업을 위해선 각자가 자기계발에 대한 책을 한 권씩 써야 한다. 구 소장의 ‘50대 10계명’ 중에는 이 밖에도 △1년에 100권의 책을 읽고, 1권의 책을 쓰자 △1년에 한 번 좋은 시절, 좋은 친구들과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등이 담겨 있다. 눈길을 끄는 독특한 계명 하나는 가난과 외로움을 체험하는 것. ‘60세가 되는 날 한적한 어촌을 찾아가 평일 하루에 1000원, 주말 1만 원으로 한 달간 버티며 생활하자’는 것이다. “은퇴 이후를 상상해 봤어요. 시간은 넘쳐나는데 쓸 수 있는 돈은 적은 상황에서 그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한계상황에서 외로움을 벗 삼아도 버텨낼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준비하는 겁니다.” ○ 다시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 최 교수가 ‘제2의 인생’을 맞는 50대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실천은 ‘유서를 써 보라’는 것이다. 50세 이후를 또 하나의 새로운 삶으로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 유서 쓰기가 큰 도움을 준다는 것. 이는 구 소장이 제안하는 ‘10년 후 내가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장면 10개를 생각해 보라’와도 일맥상통한다. 최 교수가 동년배 50대에게 가장 강조하는 ‘생존기술’은 공부다. “한국인의 평균적인 삶을 돌아보면 기껏해야 20년 남짓 돈벌이를 하겠다고 10대와 20대 대부분을 투자합니다. 50세 이후 30∼5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그 기간을 위해서는 공부 한 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죠.” 공부만큼 노는 것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최 교수는 은퇴생활자의 말을 인용해 “노는 것도 최소한 10년은 배워서 준비해야 한다”며 ‘잡기(雜技)’를 배우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제안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친구관계를 확실히 다지는 일이다. 함께 늙어갈 친구들이 주변에 있는 것만큼 큰 행복도 없다는 점에서 최 교수는 이를, 나를 위한 ‘행복 네트워크’의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 운동을 배울 수 있는 마지막 시기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 박원하 교수는 “50대는 40대에 비해 육체적 능력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60대가 되면 평형감각이 떨어져 새로운 운동기술을 배울 수 없게 된다”며 “50대는 운동기술을 터득할 마지막 시기이므로 자신의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흥미를 감안해 한 가지 운동 기술을 충분히 터득해 두라”고 조언했다.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50대에 막 접어들 때 자산 구성, 보험, 연금, 역모기지, 실버타운 등 5가지를 검토하라고 충고한다. 신한은행 고준석 PB팀장은 “환금성과 현금의 자산가치 변동이라는 2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면 50대 초반에는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이 50 대 50 정도가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어떤 대비보다도 50대가 이루어야 할 발상의 전환이 궁극적으로 가 닿아야 하는 것은 행복의 원천을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두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시형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장은 “50대는 줄곧 가족이나 회사 등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규정해 온 세대이기 때문에 지금부터의 삶에서는 ‘개인’을 찾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그 실천 방법으로 ‘기부의 생활화’를 제안했다. “자식에게 물려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번 돈은 내 대에서 쓰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작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과의 관계 맺기, 내 삶에서의 우선순위 등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질 겁니다.” ■“늦었다고요? 잠자는 꿈을 깨우세요”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던 것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이탁오는 자신이 공자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 사유를 펼친 때가 지천명(50세)의 나이를 넘어서라고 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관직을 전전하다가 53세에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에야 자신의 독자적 사상을 담은 ‘분서(焚書)’와 ‘장서(藏書)’ 집필에 매진해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백곡 김득신은 1만 번이나 읽어 곁에 있던 하인조차 외워 읊조릴 수 있는 책의 내용을 잊어버릴 정도로 노둔했다. 그런 그가 고군분투 끝에 과거에 급제한 나이가 58세. 이후 그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거듭났다. 이마누엘 칸트가 자신의 대표작인 ‘비판 3부작’의 첫 책 ‘순수이성비판’을 발표한 나이는 57세였다.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철학을 구현했다”는 평을 듣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첫 명성을 안겨준 ‘전체성과 무한’이 발표된 것도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여고 졸업 학력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며 두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던 서진규 씨. 뒤늦게 미군에 입대한 뒤 공부를 시작한 그는 58세인 올해 6월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은퇴한 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자선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그의 나이도 올해 ‘겨우’ 51세다.(퍼온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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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루카 복음 19장 41-44절)
평화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