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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종로 쪽 들머리에 ‘피맛골’이란 작은 보람판과 함께 허름한 골목이 있다. 조선시대 종로통은 고관대작들의 행차가 많았다. 고관만 납시면 길 양쪽으로 넙죽 엎드려 있어야 하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서민들만이 이용하는 뒷골목이 생겼는데 바로 피맛골이다.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인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지금까지도 서민들을 위한 싸고 맛있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시민기자, 동료시민기자 꾐(?)에 빠지다
친절하게 전화까지 해준 동료시민기자. 음, 맛집기사? 그래, 구미 당기지. 안 쓴 지도 꽤 오래 됐고. 그렇지만 피맛골이야 원래 유명한 데고 싸고 맛있는 집이야 골목골목 빼곡한데 뭐 특별할라고? 그러나 메뉴에 호감이 간다. 돼지불고기와 오징어볶음의 불륜이란다. 돼지고기, 낙지, 오징어, 굴, 고등어, 동태 등과 함께 곁들이는 소주 한 잔이면 아주 환장을 하다못해 오줌지리는 줄도 모르는 치가 바로 나다. 무엇보다 돼지고기 맛이라면 ‘오직 내 주둥이!’를 외치는 나다. 대한민국에 지난 반세기가 흐무러지는 동안, 나보다 돼지고기 많이 먹어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유난히 돼지고기를 좋아하셨던 선친
겨울 들머리 요맘때면 집에서는 꼭 동태순대나 오징어순대를 만들었다. 동태나 오징어 배를 갈라 속을 다 파낸 뒤 갖은 양념과 채소를 버무려 다진 돼지고기로 속을 채웠다. 명주실로 터지지 않게 가늠 묶어 빨랫줄에 쭉 매달아놓으면 얼다 녹다를 반복하며 기막히게 숙성된다. 구워 먹어도 좋고, 쪄서 양념간장에 찍어먹어도 달금하고, 순댓국으로 끓여도 기막히고…, 한겨울 나기 순대 대여섯 광주리면 그만이었다. “괴기맛 아는 사람이므느 당연히 돼지괴기지비. 쇠괴기느 탕으로나 제격이지 깊은 맛이야 돼지괴기만 하겠음? 거저 이거이 싸고 영양 많고 최고임매.” 우리 집 밥상엔 사시사철 돼지고기가 끊이지 않았다. 김치볶음, 김치찌개, 고추장찌개, 제육볶음, 온갖 만두와 순대종류…. 돼지고기가 빠지면 상차림이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냐면,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삶은 웃고명을 냉장고에 넣어둔 뒤 아버지 현장 일꾼들 새참 때 시켜주는 중국음식에 담뿍담뿍 얹어 내놓을 정도였다. 내가 돼지고기와 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터.
아버지 말씀인즉, 돼지고기를 된장과 함께 일단 한 번 삶아 낸 뒤 소고기처럼 잘고 늘어지게 썰어 소불고기 양념에 재두자는 것이었다. 돼지냄새 나서 안 된다고 어머니가 말렸지만 아버지는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실행에 옮기기로 소문 난 ‘북청물장수’의 후예였다(함경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오죽했으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름을 어머니 반대도 아랑곳없이, 성도 다른데 ‘파인 김동환’의 이름을 따 지을 정도였다). 싸한 추억과 함께 소주 한 잔
1986년. 아버지는 예순여덟 되시던 해 초여름, 스물여섯 덜 익은 아들 하나 남겨두고 눈을 감으셨다. 위장천공으로 이것저것 따질 새 없이 수술을 했는데 암세포가 발견되고 말았다. 개복 후 ‘전이’라 속수무책이었다. 국립의료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던 아버지는 끝까지 정신만은 멀쩡하셨다. “보기요, 아들! 거 돼지불고기 한 점에다가 쇠주 한 잔만 했으므느 딱 좋겠다이.” 강한 아버지, 나는 사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끝내 그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막급이다. 그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그깟 ‘괴기 한 점 쇠주 한 잔’ 왜 못 드렸나 말이다. 추억은 늘 아프다. 그래서 되도록 잊고 산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패기를 찢으니까. 이제 불혹을 넘겨 지천명 등성이에 매달린 그 ‘덜 익은 아들’은 돼지불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그득 따라 마시며 세상사 잊는 평범한 가장이 되어 있다. 아직 어린 아들(이잉걸)은 내가 아반(아버지) 얘기 꺼낼 때마다 슬픈 얘기 하지 말라며 도리질을 친다. 그래, 세상은 흘러가는 거다. 저도 나중에 나이 먹으면 나처럼…, 한소끔 아비를 기억하겠지. 도수 낮아진 이후 맛을 모르겠던 소주가 오늘따라 쓰면서 달다. 아린 추억 한 자락 때문에 쓰고, 마누라랑 아들 녀석 얼굴 떠올리며 희망 때문에 달다. 좋은 사람 더하기 맛난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과 이바구 한 소쿠리. 그래, 이 맛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살만하다! (펌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