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즘] 축구전술이 선수에 미치는 영향
박지성이 시즌 두 번째로 선발 출전한 9월20일 맨체스터 더비.ⓒgettyimages/멀티비츠 |
주전경쟁이 팀 전술 변화의 여파라면 문제는 다소 복잡해진다. 기타 등등의 과정을 접고 본다면 포메이션을 포함하는 큰 틀의 전술 변화는 선수 입장에선 당장은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는 불편과 부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팀보다 선수가 우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인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빼어나다면 해당 선수를 중심으로 팀 전술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예는 극히 제한적이다. 팀 전술이 중심이며 선수는 자신의 스타일과 역할을 팀 전술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팀으로서의 기능과 경쟁력이 중요성을 더하는 오늘날에는 특히 그렇다. 물론 감독이 소속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전술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항과 파리아스 감독의 사례는 K리그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다.
박지성과 맨유의 이번 시즌 상황과 맞물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맨체스터 더비전에 시즌 두 번째로 선발 출전했지만 박지성의 소속팀 내 입지가 자리를 잡았다고는 보기 힘든 시즌 초반 흐름이다.
주전 경쟁의 여러 요인들
이러한 이유로 호날두와 테베스의 이적과 이와 연결된 박지성의 골 결정력 부족을 짚는 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주포가 빠졌으니 박지성이 그 빈자리를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접근인데 퍼거슨 감독이 애초 박지성의 맨유 영입을 결정한 이유와 거리가 있으며 그간 박지성이 맨유에서 보여준 플레이 특징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공격진이 약화된 가운데 많은 골을 기록하면 좋겠지만 적지 않은 나이의 박지성이 어느 날 갑자기 해결사로 변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현실적이지 않다. 이따금씩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골을 터뜨리지만 박지성의 주된 경쟁력은 골 결정력이지 않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이 골과 관련해서는 이전이나 요즘이나 특별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선수들 간의 주된 역할은 따로 있으며 이러한 역할이 조화를 이룰 때 팀은 강해질 수 있다.
골 결정력 문제가 아니라면 시즌 초반 박지성의 입지가 축소된 이유는 무얼까.
핵심은 맨유의 전술 변화다. 호날두와 테베스 등이 빠진 맨유는 전술적으로 지난 시즌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의 이적 후 그의 빈자리를 특정 선수를 통해 메우는 방식(당장은 호날두의 역할과 능력을 대체할 선수를 뽑는 것이 마땅치 않기도 했지만)이 아닌 아예 새로운 판을 짜는 대폭적인 전술 변화를 예고했고 실행하고 있다.
맨유 전술 이동의 열쇳말은 속공→지공, 전환→균형이다.
호날두가 존재하던 맨유 전술 특징은 빠른 위치 변화와 패스를 통한 속공이었다. 호날두와 루니 등 전방 공격수들이 위치와 패싱 루트를 빠르게 바꾸며 치고 들어가는 장면이 상징적이었다. 이는 특정 선수 개인이 단선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역습과는 다른 형태로 영국 현지 표현을 빌리면 커렉티브 카운터(Corrective counter)의 맨유로 불렸다.
호날두의 맨유 시절의 변환 가능한 속공 전술은 빈 공간으로 빠르게 주고받거나 치고 들어가는 능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강한 체력, 카운터 공격이 끊겨 상대에게 재역습을 내주는 상황에서의 수비 능력이 선수들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됐다. 특히 맨유의 전환과 속공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두드러졌는데 체력과 수비력의 박지성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중용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맨유의 전술 변화와 박지성
호날두와 테베스가 빠진 맨유의 올 시즌 전술 특징은 지공과 균형이다. 자기 진영에서 공을 연결하다 선수 개인 혹은 2대1 등의 부분 전술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 슈팅을 때리는 방식이다. 볼 점유율을 극대화하는 전술로의 전환이다. 아스날의 벵거 감독으로부터 안티 풋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맨유의 점유율 축구는 이전 체력과 스피드를 강조한 전환과 속공의 전술에 비해 안정적으로 공을 다루는 기술과 수시로 공간을 파고드는 적극성을 선수들에게 요구한다. 빠른 공수 전환이 지구력의 뒷받침 없이는 어려운 과제라면 점유율의 축구는 공을 돌리고 다루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따르지 않으면 난감한 전술이다. 맨유와는 또 다른 방식이지만 점유율 축구의 현 최고 수준의 팀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의 예가 이해를 돕는다.
전체적인 스피드와 체력은 전성기만 못하지만 탁월한 볼 센스를 지닌 라이언 긱스가 올 시즌 두각을 나타내는, 일명 ‘긱스 회춘’ 사건과 미드필더 내 포지션 이동이 자유로운 대런 플레처의 성장을 설명할 수 있는 맨유 전술 변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퍼거슨 감독이 오는 1월 스페인 대표팀의 미드필더 다비드 실바를 영입하려는 움직임과 연결해 살필 수도 있다.
박지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현재 능력을 극대화하기 쉽지 않은 맨유의 전술 변화다. 속공의 뒤를 받치는 공수 밸런스 능력과 체력이라는 박지성의 장점을 두드러지게 표출하기 여의치 않은 여건의 조성이다. 물론 공수 밸런스와 체력은 점유율 축구에서도 중요한 능력으로 박지성이 보다 많은 출전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점과 더불어 공격적인 공간 활용의 적극성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 스스로의 변화를 끄집어내야 한다. 공과 근접한 움직임의 강조다. 골 결정력이 아닌 득점 과정의 적극적인 관여가 박지성 주전 경쟁의 핵심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본선 라운드 돌입과 혹독한 일정의 시작, 공 없는 위치에서의 움직임 등은 박지성 주전 경쟁의 호재이지만 현재의 흐름이 부상과 로테이션 시스템 등 과거의 원인에 기인한 것이 아닌 팀 전술 변화라는 새로운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박지성에겐 분명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박지성이 변화한 맨유 전술에 얼마만큼 녹아들 수 있느냐와 더불어 장기 레이스에 따른 선수들의 부침과 그로 인한 또 한 번의 전술 변화,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결선 토너먼트 진출 여부와 윈터 브레이크 이후 선수단의 체력적 안배 등이 향후 박지성 주전 경쟁의 변수가 될 것이다.(박문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