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리더십 최고를 가리자(펌글)

2009. 7. 13. 오후 12:31:57

글자

'리더십' 최고를 가리자

박문성의 선택

스티븐
제라드
188cm/ 83kg
리버풀

스티븐 제라드

VS

서형욱의 선택

파올로
말디니
186cm/ 85kg
AC밀란

파올로 말디니

박문성 · 서형욱 전문가의 분석을 보신 뒤 투표와 댓글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전문가 분석
구분 스티븐 제라드 파올로 말디니
 
프로필
 
이래서 최고다 나의 심장이 리버풀을 원했다.

프란츠 베켄바워, 바비 무어, 디에고 마라도나, 브라이언 롭슨, 프랑코 바레시, 카를로스 둥가, 디디에 데샹, 조셉 과르디올라, 로이 킨.......

20세기 필드를 수놓은 위대한 캡틴들이다. 과거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혼자의 힘으로 팀의 운명을 좌우하는 마법사적 재능을 갖고 있거나, 나이와 경험이 여타의 선수들에 견줘 월등하거나,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이끄는 유형의 인물이 주장 직을 도맡았다. 마법사가 마라도나라면, 카리스마의 대표주자는 킨이었다.

리더십의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과거의 리더십이 앞에서 끌고 가는 선도적 유형이었다면 현재의 리더십은 서로 소통하고 장단점을 보완하는 쌍방향 신호등의 연결고리 역할이 핵심이다. 한국대표팀의 새로운 주장 박지성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세상의 흐름과 맞물려 축구 경기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날고뛰는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클럽에서 24살의 나이에 주장에 오른 선수가 있다. 위엄을 앞세워 동료들을 탓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유틸리티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주위에 자신의 재능과 존재감을 가볍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캡틴이다. 그것도 클럽 100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주장으로 불린다. 케니 달글리쉬와 더불어 레즈의 영혼으로 팬들의 심장에 새겨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리버풀의 위대한 캡틴 스티븐 제라드다.
리더십 [leadership] : 집단의 목표나 내부 구조의 유지를 위하여 성원(成員)이 자발적으로 집단활동에 참여하여 이를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능력 (네이버 백과사전)

축구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스포츠와 매우 다른 특성을 갖는다. 전반전 45분과 후반전 45분 사이의 하프타임을 제외하면 경기 시간을 알리는 시계는 90분 내내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여타 종목과 달리 작전 타임도, 공수 교대도 없는 축구의 이러한 측면은 일단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나면 그라운드 위에 나선 11명 선수들의 발에 더 큰 무게가 실리게 하는 요소가 된다. 감독과 코치가 종종 벤치에서 목청을 높여봐도 선수들의 경기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탓이다.

따라서,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이 승리(집단의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팀웍을 유지할 수 있도록(내부 구조의 유지) 구성원들, 즉 선수들의 자발적 참여 의지를 북돋우는 선수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흔히 주장(captain) 완장을 팔뚝에 차고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들의 역할이 집중 조명되는 이유도 이들이 발휘하는 '리더십'에 따라 팀 성적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 2008/2009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AC밀란의 수비수 파올로 말디니는 그런 면에서 최고의 리더십을 가진 선수로 꼽을만하다. 말디니는 지난 1997년 프랑코 바레시에게서 소속팀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 이래 올해까지 무려 12년간 AC밀란의 '캡틴'으로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도 그는 역시 바레시로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받았는데 1994년부터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2002년 한국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8년 동안 이탈리아 대표팀의 '리더' 역할을 맡았다.) AC밀란의 주장을 맡는 동안 말디니는 각각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와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팀에서 오랫동안 주장 완창을 찬 것이나 소속팀의 유럽 제패를 두 번이나 이끈 것은 말디니가 최고의 리더십을 갖춘 선수라는 확실한 증표가 된다.
 
베스트 모멘트 카리스마가 비켜간, 21세기 새 리더십의 동력은 감동과 신뢰다.

제라드가 네오 리더십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빅 클럽들의 끊임없는 영입 콜이 이어지자 제라드가 던진 "나의 심장이 리버풀을 원했다"는 메시지는 세상의 그 어떤 표현과 행동보다도 동료와 팬들을 '팀' 이름 아래 하나로 뭉치게 만든 강력한 도구였다. 이러한 구심력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리버풀 재건의 지대한 동력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물리적 힘보다 감동을 전제한 신뢰가 21세기 리더십의 핵심임을 보여준 기억이다.

리버풀이 위치한 머지사이드주의 위스톤 태생으로 어찌 보면 제라드의 레즈 사랑은 당연할 수도 있으나 자본의 힘이 클럽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오늘날 유럽 축구계의 현실을 비추면 의미를 더하는 제라드의 길이다. 리버풀과 제라드가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길이고 선택이다.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스탄불의 기적을 또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제라드가 보여준 감동과 신뢰에 기초한 리더십의 사례는 필드 안팎에 숱하다. 물론 감동과 신뢰에는 실력이 전제돼야 한다. 지네딘 지단의 말을 빌린다. "팀을 지탱하고 이끄는 능력, 이를 받치는 팀플레이의 재능에 있어서는 제라드가 단연 세계 최강이다."

제라드는 따뜻하고 섬세하다.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리더십을 가능케 한 제라드 내면의 모습이다. 2006년 10월 맨유와의 클래식 더비전을 앞두고 둘째 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자 밤새워 간병한 뒤 경기에 나서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던 일, 2007년 10월 자신의 차에 교통사고를 당한 소년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챙겼던 모습들 하나하나가 제라드의 내면을 비추는 흔적들이다.
말디니는 AC밀란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1985년 1군 무대에 데뷔한 이래 지난달 은퇴할 때까지 무려 24년간 단 한 번의 이적 없이 뛰었고, 이 기간 동안 1천 경기가 넘는 시합에 나서 팀 승리를 위해 헌신했다.

돈과 명예를 좇아 이적이 난무하는 현 시대에 단 한 팀에서만 뛴 말디니의 커리어는 그가 밀란의 상징이자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데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 자신에 앞서 대표팀과 소속 클럽의 주장을 맡았던 프랑코 바레시의 영향을 크게 받은 말디니는 왼쪽 수비수로 뛰던 젊은 시절이나 중앙 수비수로 뛴 베테랑 시절 모두 팀 수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주장으로서도 능숙하게 팀을 리드해 각광을 받았다.

수 많은 승리의 환희를 맛본 말디니의 안정된 리더십은 그가 환호의 순간보다 뼈아픈 패배의 기억을 더 깊이 간직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말디니가 A매치 은퇴 경기가 된 2002년 월드컵 16강 한국전이나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2005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리버풀전을 인터뷰에서 종종 언급하는 것은 그의 승부욕과 리더로서의 자부심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본인이 역대 챔피언스리그 최단시간 득점(51초)을 기록하기도 했던 2005년 결승전에서의 패배는 뛰어난 경기력을 드러내며 상대를 압도한 전반전의 스코어(3-0)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주장이자 리더였던 말디니에게는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후반에 3골을 허용한 뒤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에서 리버풀에 패했다.)

하프타임에 이미 샴페인을 터뜨렸었다는 당시 밀란 관계자의 증언은 선수들의 들뜬 분위기를 제대로 가라앉히지 못한 리더의 자책이 얼마나 깊었을 지 짐작케 한다. 말디니는 이 경기를 자신의 커리어 중 최악의 순간으로 꼽았는데 거의 비슷한 구성의 선수단을 이끌고 불과 2년만에 다시 진출한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승리, 기어이 유럽 챔피언 트로피를 획득하며 당시의 아픔을 덜어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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