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에는 고통 중에 기도하고 매달리고 의논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없다.
아무리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기에 힘쓰는 도덕적인 인간이라도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매달리고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는법이다.
특히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그러했다.내가 죽을 때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가족이나 친지가 죽어갈 때도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희망을 갖고싶어한다.
안죽게 해달라고 매달릴 때도 절대자를 찾게 되지만, 마침내는 죽음의 손에
목숨을 내맡길 때도 이 세상에 내 뜻으로 온 것이 아니듯이 거두어가는 손길을
느끼고 그 손길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고 싶어한다.
죽을때 우아하게 죽고 싶어서,행복할때 감사하고, 불행할 때 기도하고 싶어서,
자신의 존재가 불안하게 흔들릴 때 의지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기도는 사람의 정신을 돌게 하는게 아니라 바로 잡아 주는것이고, 바로잡는다는 건
중심을 잡아 주는 일이 아닐까.
종교에 다름은 그 중심에 누구를 세우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큰 기도는
잘 안 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이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 주시는 게 당연하고, 잗다란 기도는 잔 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잗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밖에,
기도의 은총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기도한다.
호미를 읽는중에 제 마음에 와 닳는 구절이라 적어 봤습니다
박완서님의 호미 본문중에서.
박완서 호미를읽고
2007. 5. 11. 오후 4:22:50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