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병이 처음 우리 군견 진료소에 온 것은 한 겨울 새벽이였다._
_군견의 응급 후송 체계는 신속해서 일반 군인 이상으로 대우를 받는다.--
"후루소"는 오상병(처음 왔을 때에는 계급이 일병 이었다.)이 군견이면서 애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내가 진료실에 도착하자 잘 생긴 독일 세퍼트견인 후루소라는 체구나 체모가 번듯하고 잘 조화가 이뤄진 멋진 군견이었다. 하지만 입주위에 히긋히긋한 흰 털이 그의 나이를 말해주듯이 9세된 노병은 의연 하게 치료대위에 올라 서 있다.
오일병은 걱정스런 눈 빛으로 나를보자 긴장하며 후루소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손 끝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체온을 재보고 여러가지 검사를 해보았으나 식욕부진과 고환염으로 생각되는 고환의 부종(한 쪽의 고환이 어른 주먹 정도의 크기로 부어 있었다)과 어딘가 모르게 수척해보이는 정도의 별로 심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벽 잠을 설친 터라 빨리 처방을 내리고 쉬고 싶은 생각 뿐 이었다. 그러나 오일병은 머뭇머뭇 거리면서 어눌한 충청도의 그 특유의 사투리로 계속해서 걱정에 찬 질문을 했으나 괜찮아질거라 일축하고 항생제와 영양제를 처방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못다한 취침에 들어갔다.
고환염으로 진단하고 3일간 계속해서 치료를 했으나 부종만 조금 사그라지는듯 하고 고환의 크기는 여전 했으며 식욕도 좋아지지 않고 오일병의 수심은 점점 깊어져 갔고 나도 진료 반장님께 보고하여 고환 적출술을 하기로 하였다. 약간 촌스럽고 퉁퉁한 편인 오일병은 요 며칠동안 잠을 못 자서인지 얼굴이 푸석해지고 눈이 퉁퉁부어 더욱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고환 적출을 한다하니 무슨 커다란 일이나 벌어진줄 알고 오일병은 크게 걱정을 했으나 안심을 시키고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그 적출된 고환은 서울대 병리실에 보내고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일병은 추운 겨울을 춥고 냄새나는 군견 입원실에서 후루소와 같이 살다시피했다. 특히 식욕이 없어 계속되는 수액영양제를 지극 정성으로 차지 않게 덮이면서 춥고 긴 겨울 밤을 후루소와 날 을샜다.
군견병은 자기 생일은 못 찾아 먹더라도 자신이 맡고 있는 군견의 생일은 꼭 챙겨 준다. 생일날이면 px에서 소세지나 맛있는 고기 통조림을 사주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식당에서 고기를 구해 먹이곤 한다.
휴가 때에는 중간에 개가 보고 싶어 면회를 오거나 특히 제대후에도 일부러 자신의 군견을 면회 오는 군견병이 많이 있다. 전방에서 항상 군견과 생활하고 관리하는 그들은 고참에게 기합을 받거나 외롭거나 무엇인가 하소연 하고 싶을 때에는 자신의 애견을 붙들고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애로 사항을 털어 놓고 그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특히 오일병은 후루소에게 보이는 애정은 가히 눈물 겹도록 지극한 것이라서 자신의 부모에게 저정도로 정성을 보인다면 효자상은 받고도 남았으리라. 간혹 건성으로 간호하는 군견병들에게는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
서울대에서 후루소의 병명이 부고환암이라고 연락 받은 것은 거의 겨울이 끝날 무렵 이른 봄이었다. 그동안 후루소는 많이 수척해졌으며 오일병이 우리 수의관실에 와서 언제 결과가 오느냐고 문의한 것은 수십차례는 될 것이다.
오일병에게 결과를 이야기 하고 연구용으로 서울대에 보내기로 하였다고 전하니 그의 퉁퉁한 눈에서는 닭똥만한 눈물이 떨어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진료실에서도 하도 차도가 없고 계속해서 식욕부진이 보여 여러가지 검사를 했는데 특히 x-ray상으로 오른쪽 폐에 커다란 덩어리(mass)가 감지되어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확실한 조직 검사가 나올 때까지는 비밀로 하였던 것이다.
후루소는 결국 대학 병원의 연구용으로 보내지고 오일병의 그 지루하고 지극한 투병(?) 생활도 마감이 되었다. 이젠 햇볕이 제법 따뜻한 봄날이 다 되었다.
나는 부대 간부 회의 시간에 그간의 여러 정황을 부대장에게 보고하고 특별 휴가를 청원하였다. 부대장은 쾌히 승락하고 그는 3박4일간의 휴가를 얻어 충청도로 내려갔다. 그의 계급은 상병으로 진급이 되어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오상병은 누런 봉지를 쑥쓰러운듯 내밀고 씩 웃는다. 휴가 선물로 사왔다는 것인데 내가 장교인지라 부하들로부터 휴가 선물을 몇 번 받아 보았지만 이렇게 촌스러운 선물은 처음이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소주 한 병, 담배 1갑, 오징어 1마리 등 그외 안주 될만한 것이었는데 참으로 순박한 마음에 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많이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머리만 긁적거리며 그 동안 고마웠노라고 감사의 인사를 꾸벅한다. 내가 위로의 말을 하면서 앞으로 너에게 배당되는 새 군견은 품성과 건강과 훈련 성적이 제일 좋은 놈으로 선정해서 주겠노라고 말을 했더니 그는 다시 후루소 생각이 났는지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 했다.
사실은 3박4일 휴가중 2일간은 집에서 쉬고 나머지 하루는 서울대에 가서 후루소를 데리고 같이 간 학생을 찾아 후루소가 묻힌 곳을 알아내서 그곳에서 소주 한 잔 부어 놓고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왔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후루소가 서울대로 후송갈 때 오상병도 같이 따라 가서 같이 간 학생에게 아마 부탁을 해 놓은 모양이었다. 아무데나 묻지 말고 꼭 찾을 수 있도록 잘 묻어 달라고... 나도 더 이상 그를 바라볼 수 없어서 그의 어깨만 두들기며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이십년이 지난 이야기 지만 그순박하고 정많은 오상병이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