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성가단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연찮게 여러분들과 한달가량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몇일전 주임신부님의 요청에 순명의 응답을 하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예로운 부제서품전례와 교동성가대를 위해서 소명을 다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한분의 성직자가 탄생한다는 것은
우리모두는 물론이고 교회에도 말할 수 없는 큰 은총이고 영광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런 영광의 순간에 한번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더없이 영예로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 거룩한 전례에 성가단원으로 함께한다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닙니다.
짧게 보아도 10년을 준비하신 과정이셨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서품을 받으시는 학사님은 또다른 아픔을 겪어내셨던 분이십니다.
어머니가 태중의 아기를 위해 10달을 조심스럽게 온 정성을 쏟아 준비하듯이
우리 또한 그런 어머니의 마음으로 앞으로의 한달을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태안에 한 성직자를 탄생시킨다는 거룩함을 품은채로 말입니다.
단원 여러분들의 열정을 부탁드리면서
얼마전 제가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인용하며 인사를 대신합니다.
......
우리는 왜 성가를 부를까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이렇게 성가 부르는 것을 좋아할까요?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에서는 성가를 부르는 목적을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를 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가를 즐겨 부르는 이유도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나아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성화되기를 바라는 신심의 표현이겠지요.
따라서 성가를 이에 맞갖게 부르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조건이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꾸준한 제 생각(고집)입니다.
그것은 물론 영성적인 밑받침과 음악적 밑받침을 말합니다.
어느 한쪽만 가지고는 성가를 부르는 이유(목적)에 맞갖다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냥 하느님을 생각하며 즐겁게만 부르면 되지 하는 생각이나
음악적으로만 완성시키려하여 마치 오페라하듯 웅장하고 화려하게만 부르려 하는 것
이 두가지 모두 맞갖은 성가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범의 길을 걸어야 하는 성가대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음악적으로
1. 겸손한 음색의 발성,
2. 정확한 피치의 음정,
3. 정확하고 부드러운 딕션과 발음
4. 절제된 음악적 표현(과장되거나 극적인 표현의 절제)
영성적으로
1. 하느님의 거룩함에 맞갖은 품위를 갖춘 곡의 선곡
2. 화성의 아름다움에 선행된 노랫말(기도)의 묵상
3. 공연(? 본날의 연주)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연습(개별적연습, 전체연습)의 과정안에 하느님 초대하기
4. 하나되기 위한 겸손한 배려(지휘자, 옆사람, 다른 파트)
이 두가지가 같이 균형있게 밑받침되어져야만 비로소
하느님께 드릴 자격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나아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청하게 된다고 봅니다.
여러분들도 깊게 생각해보시지는 않으셨겠지만 결국 같은 생각이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기에 이왕
우리가 이 거룩한 길을 걷기를 선택하였으니
후일 천상 예루살렘의 식탁에서도 주님의 곁에 자리하여 그분께 직접 거룩한 찬미를 드릴 수 있는 영예를 청하며
조금씩만 더 분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위의 몇가지 조건들을 기억하며
하루에 30분씩만 투자하여
매일 매일을 찬송하는 생활을 하시면 제가 참 좋겠습니다.
아니..
그분께서 참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겸손함이란 단어를 여러차례 썼는데..
진정한 겸손이란 자신감에서 나온다는 것 아시지요?
즉, 실력이 있어야 겸손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당당함이나 내적인 자신감이 없이 나오는 것은 비굴함이지 결코 겸손함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비굴함을 받기 바라실까요? 겸손함을 받기 바라실까요?
반갑습니다.
2012. 5. 31. 오전 11: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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