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복음화사도회 1월기도모임 -2006. 1. 8(일) 오후2시-
<주님공현대축일 미사 강론 - 지도신부 김한석(토마스) 신부님.>
세상의 자연은 언제나 변함없이 정해진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간직합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 인간은 좀더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기술을 개발하며 동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외부환경이 아니라 내부환경, 예를 들어 인간의 생각이라든가 가치관, 이해와 용서 사랑과 믿음 등의 환경도 사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내적인 환경보다는 외적 환경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우리는 정말 인간다운 삶의 환경을 위한 진리를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해준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서에서는 주목받는 두부류의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쪽은 현자이고 한쪽은 권력가입니다. 다시 이야기해서 현자는 동방박사 세사람을 이야기 하고 권력가는 헤로데왕으로 나옵니다.
이 동방박사 세사람은 삶의 진리와 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고 헤로데왕은 권력과 영화 속에서 화려한 외부환경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대변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내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 외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이 두가지를 선택하도록 오늘복음은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권력가가 되고 싶습니까? 현자가 되고 싶습니까? 솔직하게.. 우리가 사실 머리로는 현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마음에서는 권력가가 되고 싶지요. 않그렇습니까?
더 갖고 싶지요. 더 얻고 싶고 사실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 이 두가지 삶의 길의 현실에서 헤로데왕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행복해보이고 잘나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대로 동방박사처럼 욕심을 버리고 엄격하게 자기를 관리하면서 사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고생을 스스로 자처하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신앙의 길에서는 동방박사처럼 되야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내 삶 속에서 그 두가지 갈림길에서는 갈등을 느낀다라는 것입니다. 쉽게 동방박사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갈등을 느낀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두 가지 삶의 길에서 결국 진리를 만난 쪽은 헤로데왕과 같은쪽이 아니라 동방박사 세사람과 같은쪽으로서 오늘 말씀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난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신비스러운 인물을 만난다는 것 그래서 내 삶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나고 나에게 내 욕망을 채워줄 그런 인물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삶의 진리를 만난다는 것, 삶의 구원자를 만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를 뒤져봐도 예수님의 외적인 모습이 표현된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한번 성경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의 키가 몇Cm입니까? 예수님의 취미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어떤 피부를 가지셨습니까? 예수님의 외모는 잘생겼습니까? 못생겼습니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모릅니다. 2000년이라는 신앙생활 속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은 이렇다 저렇다 키가 얼마다 이러한 것을 모릅니다. 왜? 모릅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실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잣대는 늘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자제분들이 좋아하는 이제 결혼할 사람이라고 배우자 될 사람으로 사위될 사람이나 며느리가 될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제일 먼저 무엇을 봅니까? ‘부모님은 뭐하시는지.’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 애 키가 왜 이렇게 작지?’하면서 외적인 것만을 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철저하게 그 외적인 것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지 그분이 진리였다는 것, 그분이 생명이었다라는것, 그리고 길이었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지요. 그래서 요한복음을 보면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을 무어라 표현합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예수님의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분이 내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 여정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 하다라는 것입니다.
권력의 최고위치에 있는 헤로데 왕도, 당시의 율법학자도, 예수님께 도달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것은 정치적인 힘도 아니고 재력도 아니고 다양한 지식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그 잣대가 우리를 예수님께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동방박사는 무엇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까? “별”을 보았습니다. 다시 이야기해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오늘복음은 우리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만이 바로 진정한 인생의 박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그 옛날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나섬과 같은 그런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별” 그분의 빛과 가르침에 따라 우리의 목표인 길이요, 진리요, 생명 그 자체이신 그분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길을 떠난 사람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철이 들면서부터 또 신앙을 가지면서부터 우리는 각자 자신들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든 우리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도 하고 그 길속에서 환상을 쫓기도 하고 돈을 쫓기도 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비굴하고 추하게 뛰기도 합니다. 자기 한사람 잘났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이웃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길지도 않은 세월동안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무작정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동방박사가 걸어갔던 그 길처럼, 우리는 걸어가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그 길의 여정에서 참 진리를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베들레헴을 향한 세박사의 여정은 말씀을 찾아 나선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말씀을 찾아 별을 보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단지 “별”하나입니다. 그 길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분명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회의에 빠지기도 했고, 마음이 어둡기만 한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로데왕에게 가서 쉽게 길을 묻기도 했고, 그의 간교한 주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간교함이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길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주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에게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성경을 뒤져보면 이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까? 나오지 않습니까?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서 그것으로 모든 구원을 체험을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자신들의 바램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만났고 그들은 그 만남을 통해서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걸어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만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도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한다면 여지껏 내가 걸어온 삶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찾는 마음이 있고 찾아 길을 떠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젖어온 통념의 세계를 떠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삶속에서 그렇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가르켜 주는 각자의 그 “별”을 찾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웃형제의 눈속에서 때로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의 손길속에서 때로는 치매에 걸려있는 시부모의 모습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젖먹이 내 자녀들 속에서 그렇게 “빛”으로 오시는 그분의 모습을 우리는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별은 우리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의 말씀과 숨결의 별은 보입니다. 초라한 현실들과 고통스런 약자의 모습들은 우리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별은 빛을 더 발할 것입니다. 헤로데와 율법학자들같이 엉뚱하고 때로는 간교한 생각도 말씀과 숨결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길을 막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그 숨결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들도 동방박사처럼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뒤에 있는것들은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죄도 아픔도 모두 잊어버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과거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과거를 보고 버티고 서서 우리와 시비를 가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변하고 움직이는 곳에 우리와 함께 새롭게 계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 안에 살아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그 별을 따라 신앙인인 우리도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숨결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야 합니다. 살아 계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그 때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기에 이제 지금 나의 삶 속에서 나를 인도해줄 그 별이 무엇인지를 그 빛이 무엇인지를 내 삶에서 찾아보고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주님을 만나뵈올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간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