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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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니엘(Daniel)
성 사무엘(Samuel),
성 안젤루스(Angelus),
성 레오(Leo),
성 돔누스(Domnus),
성 니콜라오(Nicholas)
성 후골리누스(Hugolinus)
축일 10월 10일
1227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선교를 위해 파견된 작은 형제회 소속
선교사들이 모로코에서 순교하였는데,
이 선교단은 성 다니엘(Daniel)이 이끌었으며
함께 순교한 선교사들의 이름은 성 사무엘(Samuel),
안젤루스(Angelus), 레오(Leo), 돔누스(Domnus),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 그리고
후골리누스(Hugolinus)이다.
다니엘이 이끄는 선교단은 모로코에 도착하여
유럽 상인들이 거주하던 체우타(Ceuta) 근교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에 그들은 서로 고해성사를 받고 서로의
발을 씻겨주면서 기도로써 밤을 지내고,
일요일 아침에 체우타로 들어가서 길거리에 서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출현이 소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들은 ‘카디’ 앞에
끌려갔다. 그는 수도자들의 남루한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는 미쳤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감옥에 가두었는데, 무어인들은
그들은 마음대로 놀리고 학대하였다.
다음 일요일 그들은 자신들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 선교사라고 항변하자, 무어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마호메트를 믿으라고
강요하면서 갖은 고문은 자행하였고, 결국은
체우타 성벽 밖에서 그들을 모두 참수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후일 에스파냐로 모셔졌고,
1516년 시성식에서 교황 레오 10세(Leo X)는
이 순교자들의 축일을 성대히 거행토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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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아르사푸르(Maharsapor)
축일 10월 10일
페르시아 귀족이던 성 마아르사포르는
마르딘 신전 파괴 사건으로 일어난
에스디게르드 왕의 박해 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나르세스와 사부타카와 함께
고문을 받았으나, 이 두 사람은 노예로
팔려갔다. 그는 캄캄한 지하 감방에서
3년을 옥살이 하였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므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얼마 후에 관리들이 문을 열어보니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운명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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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울리노(Paulinus)
축일 10월 10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가
파견한 잉글랜드(England) 선교사의 일원인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주로
켄트(Kent)에서 활동하던 중 625년에
주교가 되었다. 그는 켄트의 에텔버트 왕의
딸인 에텔부르가를 수행하여 노섬브리아
(Northumbria)로 갔고, 2년 뒤의 부활절에는
요크 주교좌에서 에드윈을 개종시킴으로써
노섬브리아에 그리스도교를 전하게 되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수천 명을 개종시켰고,
왕의 뒤를 이어 개종한 이들은 연일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왕 에드윈이
이방인 머시아(Mercia) 사람들에게 살해되자
노섬브리아는 다시금 이교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로체스터(Rochester)의
주교로 봉직하다가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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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울리노(Paulinus)
축일 10월 10일
전승에 의하면 영국에서 태어난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예루살렘(Jerusalem)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아의 카푸아에
잠시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는 그 지방
사람들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가 주교직에 있던 때는
사라센족의 침략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카푸아가 사라센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그는 그 도시를 빠져나가
시코폴리스(Sicopolis)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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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니엘 콤보니(Daniel Comboni)
축일 10월 10일
1931년 3월 15일 북부 이탈리아의
브레시아(Brescia) 근처 가르다(Garda) 호숫가의
리모네 산 조반니(Limone San Giovanni)에서
출생한 성 다니엘 콤보니(Daniel Comboni)는
농부였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여덟 자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었다.
교구 신학교를 다닌 후 베로나(Verona)에 있는
마차(Mazza) 신부의 선교사 양성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장차 아프리카 선교를 하겠다는
뜻을 품고 신학 외에도 몇 가지 외국어와
의학을 공부하였다.
1857년 수단 선교를 위한 탐험대와 함께
중앙아프리카로 파견된 그는 나일 강 상류
지방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열악한 여건과 적대적인 환경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에 세 명의 신부가 사망하였다.
그래서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은 이 지방의
선교를 포기하고 성 다니엘 신부와 동료들을
이탈리아로 귀환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마차 신부의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1964년 ‘아프리카인들을
통해서 아프리카를 구원하자’는 선교 계획을
구상하였다. 즉 유럽인들이 해안선을 따라
선교지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아프리카인들을
교육시켜 내륙으로 파견하자는 계획이었다.
1867년 그는 교황의 허가를 얻어 베로나 사제회
(Verona Fathers)라고도 불리는 콤보니의
예수 성심 선교회를 설립하고, 이집트의
카이로에 아프리카인 남성과 여성을 위한
두 개의 학교를 세웠다.
모금을 위한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1872년에 베로나 수녀회(Verona Sisters)라고도
불리는 니그리지아 신심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1872년 성 콤보니 신부는 수단, 누비아 그리고
큰 호수들의 남쪽 영토들을 포함하며 이집트부터
짐바브웨까지, 그리고 홍해부터 말리까지를
관장하는 중앙아프리카 대목구의 부대목에
임명되었고 1877년에는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선교지 확보와 기금 마련을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헌신하다가 1881년 7월
말라리아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수개월간
계속 일을 하다가 결국 그해 10월 10일 하르툼
(Khartoum)에서 세상을 떠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1996년 3월 17일에 그를 복자품에 올렸으며,
2003년 10월 5일 시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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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빅토르(Victor)
축일 10월 10일
성 빅토르는 테반 군단과 연관된 330여명의
군인 순교자들의 지도자였다. 그들은
라인강(Rhein R.) 하구의 크산텐(Xanten)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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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울람피아(Eulampia)
성녀 에울람피아(Eulampia)
축일 10월 10일
순교자 성 에울람피우스(Eulampius)와
성녀 에울람피아는 갈리에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한 듯 보인다.
에울람피우스는 아주 젊은 사람이었는데,
니코메디아(Nicomedia)의 박해가 가열되자
이를 피하여 동굴에서 지냈다. 한 번은
그가 음식을 구하러 읍내로 갔다가
그리스도교를 금하는 포고문을 보고
읽고 있던 중에 어떤 군인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겁에 질려 말도 못하고
다리는 떨고 있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그 군인이 그를 잡아 족쇄를 채우고 온갖
고문을 가하면서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라는 명을 내렸다. 그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교도의 신과 우상을 공경할 수
없다고 맹세까지 하였다. 화가 치민 집정관은
이 소년을 때리고 발길질을 하여 실신시켰다.
에울람피아는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군중들을
헤치고 들어가서 오빠를 껴안고 울부짖었다.
이리하여 이 어린 남매가 온갖 고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끓는 기름 속에
집어넣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자, 이를 지켜보던 수많은
군중들이 오히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이들 남매는 결국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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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레온(Gereon)
축일 10월 10일
성 게레온(또는 제레온)은 독일의
쾰른(Koln) 순교자들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쾰른에는
그의 순교를 기념하여 지은
성 게레온 성당이 있을 뿐 그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전무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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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체르보니오(Cerbonius)
축일 10월 10일
성 케르보니우스(또는 체르보니오)는
성 레굴루스(Regulus)와 함께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의 포풀로니아
(또는 피옴비노, Piombino)로 갔다가
그곳의 주교로 활동하였다.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대화집"을
보면 케르보니우스는 로마 군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는 이유 때문에 침략자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인
토틸라(Totila)에 의하여 곰에게 던져졌다.
그러나 그 동물이 성인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자 그 자리에서 석방되었다.
또 랑고바르드족(Langobard) 치하에서 그는
이탈리아 서해안 토스카나 열도에 속한
엘바(Elba) 섬으로 귀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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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체르보니오(Cerbonius)
축일 10월 10일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의 주교였던
성 케르보니우스(또는 체르보니오)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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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카시오(Cassius)
성 플로렌시오(Florentius)
축일 10월 10일
성 카시우스(또는 카시오)와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를 포함한
9명의 순교자들이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레우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독일의 본에서 순교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그들을 테반 군단의 순교자들 중
일부로 보기도 한다. 그보다 후대의 전승은
그들은 아가우눔(Agaunum)의 대량학살을 피해
도망쳤다가 본에서 체포되어 살해된 이들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4세기에 그들의 무덤 위에
성당에 세워졌고, 1166년 리날두스(Rinaldus)
주교에 의해 그들의 유해가 로마네스크 풍의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1929년 그곳에서 그들의 유해가 다시
발견되었다. 교회미술에서 본의 수도성인인
그들은 테반 군단의 일원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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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보르자(Francis Borgia)
축일 10월 10일
성 프란치스코 보르자
(Franciscus Borgia, 또는 프란체스코)는
간디아(Gandia)의 세 번째 공작인
후안(Juan)과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5세의
비합법적인 딸인 후아나(Juana)의 14명의
자녀 중 맏이로 에스파냐의 발렌시아
(Valencia) 근교 간디아에서 태어났다.
에스파냐 발렌시아 출생의 귀족 가문인
보르자가의 후손인 그는 사라고사
(Zaragoza)의 대주교인 아저씨 밑에서
공부하였으며, 1528년에는 카를로스 5세
(Carlos V)의 궁중 자문위원이 되었다.
1529년 그는 엘레아놀 데 카스트로
(Eleanor de Castro)와 결혼하였고,
카를로스의 고문으로 10년을 봉직하다가
부친이 사망한 1543년부터 간디아의 공작
지위를 승계하였다.
1546년 그의 아내가 8명의 자녀들을 남기고
사망했을 때 그는 수도생활을 추구하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1548년에
예수회에 입회하려고 결정하였다.
1550년에 그가 로마(Rome)로 갔다가
다음 해에 자신의 재산 상속 문제로
에스파냐로 돌아왔다. 그 이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로 설교 여행을 다녔는데, 그의
설교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이기가 일쑤였다.
1554년 그는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
(Ignatius)에 의해 에스파냐 예수회의
총대리로 임명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수많은
수도원과 대학 그리고 건물들을 세웠으며,
1565년에는 예수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7년 동안 총장직에 재임하는 동안 그는
예수회를 가톨릭 개혁운동의 기수로 만들었으며,
외국 선교사업에 예수회의 참가를 독려하고,
그레고리안 대학교 설립의 책임자 중의
한 사람이 됨은 물론 폴란드 관구 설정,
프랑스의 대학 설립, 아메리카 선교 개시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1567년 그는 예수회의
회칙을 개정하였고, 1571년에는 보넬리(Bonelli)
추기경을 수행하여 에스파냐 전역을 선교
여행하다가 로마로 돌아온 지 이틀 만인
1572년 9월 30일에 운명하였다. 예수회를
그토록 왕성하고 생기 있는 수도회로 만든
이유 때문에, 그는 흔히 제2의 설립자로 불린다.
그는 1671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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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니토(Pinytus)
축일 10월 10일
그리스 태생으로 크레타의 주교였던
성 피니투스(또는 피니토)는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
(Eusebius)에 의해 그 시대의 주요한
영성적 저술가 중의 한 명으로 묘사되었다.
오늘의 성인(10월10일)
2014. 10. 13. 오후 5:29:24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