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9월28일)

2014. 9. 27. 오후 6:55:27

글자

♡9월 28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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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Marcus)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

30명의 군인들

축일 9월 28일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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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달피노 (Dalfinus)
 
축일 : 9월 28일

안네문도 혹은 달피노라고 불리우는 이 성인은
갈로-로만 가문의 아들로서, 다고베르트 1세의
궁중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았고,
국왕 클로비스 2세의 자문관이 되었다.
몇 년 뒤에 그는 리용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로마를 처음 방문할 때에는 그당시 20세에 불과하던
요크의 성 월프리드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 후 658년 9월 28일, 국왕 클로비스 2세의
사망으로 인한 혼란 중에 그는 마콩에서
군인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성 월프리드는 그의 장례를 리용에서
거행하였는데, 달피노는 이곳에서 순교자로
공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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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테타(Tetta)

축일 9월 28일 

성녀 테타는 영국 남부 도싯셔(Dorsetshire) 지방
윔보른(Wimborne)의 베네딕토회 수녀원의
원장으로서 독일의 사도 성 보니파티우스
(Bonifatius, 6월 5일)의 선교 노력을 후원하였고,
복음화를 지원하기 위해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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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  

축일 : 9월 28일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이미
부제품을 받고서 피사(Pisa)에 있는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다년간 학문과 설교를 연구하였으며,
코르토나(Cortona) 수도원의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매우 엄격히 회칙을 준수하는 사람이었으나,
이해심이 많았고 수련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에
불타오르도록 지도했던 뛰어난 수도자였다.

그의 수련생 중에서 뛰어난 제자들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프라 안젤리쿠스 그리고
무젤로의 베네딕투스(Benedictus)가 있다.
그는 프라 안젤리쿠스와 베네딕투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안배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같이
그림으로도 설교할 수 있다는 신념을 그들에게 심어주어
후일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다.
또 그의 해박한 성서 지식은 그로 하여금 ‘성서의 궤’
라는 별명을 얻게 하였다.
또한 그는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 특히 농아들을 위하여 수도자들이
봉사토록 배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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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오 이냐시오 만진(Leo Ignatius Mangin)
 
축일  9월 28일 

4명의 예수회원과 52명의 중국인 평신도들이
1900년에 순교하였는데, 레오 이냐시오 만진은
그들의 대표자였다. 그는 2000년 10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중국 교회 120명의 성인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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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동료 순교자

축일: 9월 28일

17세기 초(1633-1637) 라우렌시오 루이스와
그의 동료 순교자 16명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일본 나가사키에서 피를 흘렸다.
이 순교자들은 성 도미니꼬회 회원과 그
협조자들로서 9명의 사제, 2명의 수사,
2명의 동정녀, 3명의 평신도들인데
그중 한 사람이 필리핀 출신의
라우렌시오 루이스로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시기와 상황 아래
필리핀과 대만과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씨앗을 뿌리며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경이롭게
드러냈고 자신들의 삶과 죽음의 표양을 통해
미래의 그리스도교를 위한 불굴의 선교 정신을
훌륭하게 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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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

성 안토니우스 곤잘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텟(Guillermus Courtet) ),

성 미카엘 데 아오사라사(Michael de Aozaraza)

성 빈첸시오 시오주카 드 라 크루스
(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

축일 9월 28일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 9월 29일)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잘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텟(또는 귈레르모 쿠르텟),
성 미카엘 데 아오사라사(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주카 드 라 크루스
(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동일한 방법으로 처형된
15명의 동료 순교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에 로마(Rome)에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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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리오바(Lioba)

축일  9월 28일

성녀 리오바는 웨식스(Wessex)의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모친 에바는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와 친척이다.
세례명은 트루트게바였으나 흔히들
지오브게타라 부르다가 줄여서 리오바라 하였다.
그녀는 성녀 테타가 원장으로 있던
윔보른(Wimborne)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그녀의 천진난만한 성품과 온순함은 다른
수녀들의 모범이 되었다.

크레디톤의 성 보니파티우스가 주교가 되면서
원장 수녀에게 부탁하여 독일 내의 자기
선교지역에 30명의 수녀들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하자, 원장은 리오바를 원장으로 삼아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그들은 프랑코니아
(Franconia)의 비쇼프스하임(Bischoffsheim)에서
활동을 개시하여 급속도로 퍼져나가 독일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은 조화로운 공동체,
부지런한 수녀 혹은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자매들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리오바 원장은 용모도 아름다웠고
지적 수준도 어느 성직자 못지않았다.
이리하여 독일에서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었으므로,
주위 사람들은 무슨 위험이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주교나 성직자까지도 그녀의 충고를
들으러 왔다. 특히 카알 대제의 왕비 부인이 된
힐데가르트(Hildegard)는 절친한 친구였다.
776년에 그녀는 다른 수녀원으로 은퇴하여
지내다가 782년 9월 28일 마인츠(Mainz) 근처
쇼른스하임(Schornsheim)에서 운명하여
풀다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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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21명의 동료들

축일 9월 28일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21명의 동료들과 함께
오늘날의 알제리(Algeria) 지방인 북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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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무스 또는 막시모(Maximus)

축일 9월 28일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에 있던 고대도시인 에페수스(Ephesus)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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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 구티에레즈(bartholomew gutierrez)

축일 : 9월 28일

멕시코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사람인 그는
1596년에 아우구스띠노회에 입회하여,
푸에블라에서 사제로 서품된 뒤, 1606년에
필리핀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 후 그는
일본으로 파견되어, 우쿠시의 원장으로
활동하던 중에 체포되어 오무라 감옥에서
3년을 지내다가 나가사끼에서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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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디노(bernardino)

축일 : 9월 28일

성 베르나르디노는 또미따니 귀족가문의
후손으로 펠트레에서 태어나 마르띠노란 이름
으로 세례를 받았고, 12세 때에는 라틴어시를
쓰는 등 너무나 공부에 열중함으로, 그의
어머니가 건강상 운동을 하라고 권할 정도였다.
1454년, 그는 처음으로 지방 대학을 다녔고,
2년 뒤에는 파두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법률을
공부했고, 여기서 프란치스칸인 마르까의
성 야고보를 만나므로써 프란치스칸이 되고,
베르나르디노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1463년에 사제가 된 후 6개월 동안 아주
조용하게 공부와 기도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1469년의 베니스 총회에서 설교자로
임명될 때까지 공식적인 설교자로 활동하지 않았다.
다소 신경이 예민하고 또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후 그는 25년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설교하였다. 그는 지혜로운 성자로
공경을 받았다. 교황과 주교들 그리고 다른
설교자들도 그를 찬미하였다. 플로렌스와
빠비아에서는 군중들이 성당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길거리에서 그의 설교를 들어야 했다.
그는 일생동안 3600회 이상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지극히 단순하고 생명력이 있었고,
수사학적인 미사려구는 없었다. 또 어디를
가든지 프란치스칸임을 자각하여 환대를 거절하고
낮은 자리를 찾았다. 그는 임종하는 자리에서
후일 교황 비오 3세가 되신 프란치스꼬 피꼴로미니
추기경에게 고백성사를 본 뒤 이런 말을 남겼다 :
"우리는 모두 작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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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산즈(Peter Sanz)

성 프란치스코 세라노(Franciscus Serrano),

성 요아킴 로요 페레스(Joachim Royo Perez),

성 요한 알코버 피구에라(Joannes Alcober Figuera)

성 프란치스코 디아스(Franciscus Diaz) 

축일  9월 28일
 
1747년과 1748년 사이에 중국의 푸첸 지방에서는
성 베드로 산즈(Petrus Sanz) 주교와
네 명의 사제들이 순교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성 프란치스코 세라노(Franciscus Serrano),
요아킴 로요 페레스(Joachim Royo Perez),
요한 알코버 피구에라(Joannes Alcober Figuera)
그리고 프란치스코 디아스(Franciscus Diaz)이다.
이 다섯 명의 에스파냐 선교사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들의 지도자인 베드로 산즈 주교는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아스코
출신으로 1714년에 중국에 입국하여 활동했고,
1730년에는 모리카스트로의 주교로서 선교단의
책임자였다. 성 베드로는 순교하기 전에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용기를 잃지 마시오. 하느님의 법을 위하여
죽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그 후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베드로 산즈 주교와
동료 사제들은 모두 2000년 10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중국 교회 120명의 성인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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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벤체슬라오(Wenceslaus)
 
축일  9월 28일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통치자였던
보리보이(Boriwoj)와 그의 아내
성녀 루드밀라(Ludmilla)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은 그의 민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당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체크가(家)는 새롭게 등장한 그리스도교를
극구 반대하였다. 915년경 보리보이의 아들
라티슬라프(Ratislav)가 전국을 통치하게
되었고, 슬라브족 이교도인
벨레시안스의 딸 드라호미라(Drahomira)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프라하(Praha)에서 태어난 벤체슬라우스와
볼레슬라우스가 그들이다.

성 벤체슬라우스(또는 벤체슬라오)는
할머니 성녀 루드밀라의 배려로 성 메토디우스
(Methodius)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보데크의 학교에서 라틴어와 슬라브어를 익혔다.
그러나 920년경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부친이
마가르인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어머니
드라호미라가 섭정을 하였는데, 그녀는
반그리스도교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적인 벤체슬라우스와 그의 어머니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929년 독일의 하인리히 1세 황제의 침략을 받은
벤체슬라우스는 무력에 의해 국가가 패망하는
것보다 그를 카알 대제의 후계자이자 대군주로
인정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항복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로써 그는 독일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적인 기치 아래 슬라브족의 통합을
진행시키려 하였다. 그는 성 비토를 모시는
성당을 프라하에 세웠고 독일과의 우의를
돈독히 했다.

그의 이러한 정책은 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그로인해서 도처에서 귀족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929년 9월 그는 동생 볼레슬라우스(Boleslaus)의
초대를 받고 성 코스마(Cosmas)와 다미아누스
(Damianus) 축일 기념행사를 지내려고
스트라 볼레슬라프(Stara Boleslav)로 갔다.
축제일 저녁 그가 위험에 처한 줄을 알았다.
벤체슬라우스는 9월 28일 미사에 참례하러
가던 도중 동생과 그 일파에 의하여
처형되었는데, 성당 문 앞에 쓰러지면서 그는
이렇게 외쳤다. “동생아, 나는 너를 용서한다.”
그 후 그는 즉시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았고,
보헤미아 전 주민의 수호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지금은 체코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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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몬 데 로하스(Simon de Rojas)
 
축일  9월 28일 

성 시몬 데 로하스는 삼위일체회의
모범적인 수도자로 뽑혀서 에스파냐의 국왕
필립 3세의 궁에서 지냈다. 여기서 그는
왕비인 이사벨라의 고해신부로 큰 활동을
하였는데, 마드리드에 페스트가 만연하자
희생자들을 돌볼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국왕은 그가 병균을 옮겨올까
두려운 나머지 이를 금지시켰다. 이에 그는
궁중을 떠나 선교사로 활약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성모 성명 축일의
성무일도를 만들 정도로 성모 성명 신심에
불탔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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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실비노 (Silvino of Brescia)

축일: 9월 28일

브레시아의 주교. 이태리의 브레시아 교구에서는
9월 27일에 경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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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우스토키움 율리아(Eustochium Julia)
 
축일  9월 28일 

성녀 바울라(Paula)의 딸인
성녀 에우스토키움 율리아(Eustochium Julia)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성 히에로니무스
(Hieronymus)를 그들의 영적 지도자로 모시고
열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382년에 그녀는
평생 동정을 서약하였는데, 그녀의 갸륵한
행동에 감탄한 성 히에로니무스는
“동정을 지키는 일에 관하여”(384년)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다.

그녀는 어머니와 히에로니무스와 함께
예루살렘 성지로 갔는데, 이들 모녀는
베들레헴에서 히에로니무스의 성서 번역을
여러 면에서 도왔다. 또한 그녀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설립한 새 공동체를 지도하는
어머니를 도왔고, 후일 그녀는 어머니
바울라가 운명하였을 때 원장이 되었다.
에우스토키움은 이 수도원을 크게 개혁하였으나
약탈자의 무리들이 수도원을 파괴한 이후로는
다시 일으키지 못하였다고 한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그녀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베들레헴에서 운명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글에 의하면 그녀는
조그마한 육체에 큰 덕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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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엑스수페리오(Exsuperius)
 
축일  9월 28일 

피레네 산맥의 아로에서 출생한
성 엑스수페리우스(또는 엑스수페리오)는
405년경에 툴루즈의 주교로 승품되어 그의
선임자인 성 실비우스(Silvius)가 시작했던
성 사투리아누스(Saturianus) 대성당을
완공시켰다. 이 주교의 뛰어난 특징은
관용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집트와
팔레스티나(Palestina)에까지 은수자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는
그로부터 선물을 받고 “그는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을 곧 자기 자신으로 알았던 사람”
이라고 엑스수페리우스의 성덕과 관용을
격찬하는 감사의 글을 보낼 정도였다.

창백한 그의 얼굴은 다소 엄격하게 보였지만
실은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지닌 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리스도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사망 연대와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과도한 자선행위 때문에 죽기 얼마 전에
유배를 갔기 때문인 듯하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는 이분이 지방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분이었다고
회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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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우스토(Faustus)
 
축일  9월 28일 

성 파우스투스(또는 파우스토)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사람으로
처음에는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양심적으로 변호하기가 어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랭 수도원의 은수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7-8년을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성 막시무스(Maximus)를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성 호노라투스(Honoratus)와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
(Sidonius Apollinaris)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들에 의하면 그는 사막의
교부처럼 엄격한 수도생활로 성덕을 높이
닦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리에즈의 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는 훌륭한 주교이자 수도원장이었다.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수도자의 고행과 기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배격하여
강력히 대처한 분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성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와 힘을
모아 아리우스(Arius) 이단 등 교회 내의
모든 이단을 거슬러 정통 교리를 옹호하였다.
결국 그는 이런 활동의 결과로 죽을 때까지
유배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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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 9월 28일

그는 두클라에서 태어나, 일생을 거의 다
은수자로 살았다. 그러나 그가 로오우 수도원
(프란치스꼬회)의 원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
선교활동에 전념하였는데, 그의 설교와 표양은
수많은 루트니아 사람들을 개종시켰으며,
후스 이단자 개종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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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꼬(Francis)

축일 : 9월 28일

그는 까메리노의 칼데롤라에서 태어나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불타는
선교열을 지닌 위대한 선교사로서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고해성사에
할애하므로써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또한 그는 죄인을 회개시키고 원수시간을
화해시키는 초자연적 은혜를 받은 성인으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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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티에모(Thiemo)

축일 9월 28일 

성 티에모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 지방
귀족 가문 출신으로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고,
곧이어 화가이자 금속 예술가 그리고 조각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077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성 베드로(Petr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090년에는
잘츠부르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주교로서 성 티에모는
독일 왕 하인리히 4세(Heinrich IV)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가 서임권
문제로 충돌할 때 교황 편에 서서 왕과 투쟁하였고,
결국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추방되었다.
그 후 십자군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가는 중에
아스칼론(Ascalon,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방)에서
이슬람교도에게 체포되어 오랫동안 고문을 당한 후
끝까지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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