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9월20일)

2014. 9. 18. 오후 10:22:54

글자

♡9월 20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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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한국 103위 순교 성인들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축일:9월 20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것을 보면 대개 선교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와 성령의 힘은
성실한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생활하고자 할 때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극동 아시아의 조그마한 반도인 조선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것은 성실한 유학자들이
서적을 통해 학문을 연구한 끝에 스스로
입교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에 당신 성령의 힘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의 섭리일 것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한문으로 쓴 성서와 교리서
또는 윤리와 신학 서적들이 그 당시의 외교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고, 다른 많은 종교서적들과 함께 읽히던
천주 교회 서적들은 진리를 찾던 조선의
선량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권철신과 이벽을 중심으로 한
젊은 양반 학자들의 학문적인 모임이었던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가 1779년경에는 천주교
신앙을 알고 실천하려는 모임이 되었다.
1783년, 이승훈을 북경으로 파견하여 북경
선교사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게 했으며,
그 이듬해 이승훈이 귀국하여 이벽,권일신,
정약용,약종 형제들과 함께 첫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다.

성직자나 선교사가 없이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인
조선의 신앙 공동체는 급속도로 성장했으나
정치적 불안과 당파 싸움 및 교리와 마찰을 일으킨
조선의 풍속 때문에 심한 박해를 당했다.
1785년, 형조의 우연한 검거에 의해 야기된
최초의 박해에 이어 크고 작은 박해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수천 수만 명이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신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1793년에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1801년에
대부분의 교회 창설자들과 함께 순교했다.

목자 없는 조선의 신앙 공동체는 1825년,
로마 교황청에까지 그어려움을 호소하여
1831년에는 조선 교구가 설정되고 파리
외방선교회가 이 지방의 선교를 담당하게 되어
1835년부터 몇 명의 프랑스 선교사 들어와서
활동했으나 1839년에는 주교 한 사람과
신부 두 사람이 모두 순교했다.
1845년에는 이 땅에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잠깐 활동했으나 그 다음해에
순교했다. 서구 열강들이 극동 지방에서
세력 다툼을 벌이던 19세기 말에는 국내외의
불안이 고조되고 어리석은 정치가들의
쇄국 정책으로 1866년, 외국 성직자들이 선교
활동을 하던 천주 교회에 다시 끔찍한 박해가
일어나 1만여 명의신자들이 학살되고 십여 명의
성직자들이 모두 살해되거나 추방되었다.

이렇게 100여 년에 걸친 박해로 적지 않은
신자들이 배교하기도 했으나 학자와 남자들 뿐
아니라 부녀자와 아이들 및 평민과 상인들까지도
신앙을 위하여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
이 중에서 초기의 순교자들은 증거자료의 미비로
누락되고 1839년부터 1849년까지의 순교자들
중에서 79명이 선택되어 1925년 7월 5일에
복자품에 오르게 되었고, 다시 1866년의 박해를
중심으로 순교한 24명이 1968년 10월 6일에
시복되어 모두 103명의 순교자가 시복되기에
이르렀다. 이 103명의 순교 복자들은 한국
선교 200주년이 되는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에서 시성되어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신자들이 강요받은 것은 주로 세 가지였다.
첫째는 배교할 것,둘째는 신자들이 성명과
주소를 댈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교회서적과
성물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불복하면
참혹한 형벌을 가했는데 손과 팔,다리에
주리를 틀며 끈으로 살을 톱질하여 베어 내고
치도곤이나 곤장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몇 차례의
매를 맞으면 살이터지고 뼈가 부러지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기절하면 감옥에 처넣어 두는데 그 감옥이란
통나무로 된 움집 같은것이라서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음산하며 바닥은 습기로
가득 차 신자들의 매맞은 상처는 곪고 썩어
구더기가 생길 지경이었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아 굶주림에 지쳐 어떤 사람들은
거적때기를 뜯어서 씹고 있을 정도였다.

많은 신자가 이렇게 비참하게 옥사했는데,
차라리 교수형이나 참수형을 받는 것이 오히려
고통을 덜 받는 편이다. 많은 신자들은
이 같은 혹독한 심문과 매질 그리고
감옥 생활에도 굳건하게 신앙을 지키며 때로는
심문중에 창조주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유교의 부모 공경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에 비교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설파하다가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설명 ; 우리는 신앙 생활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만을 빌며 무사안일한 생활을 꿈꾸기 쉽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과 투쟁하며
복음의 메시지에 따라 살아가려면 비록
박해 시대가 아니더라도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고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을
생각하며 구원의 길을 용감하게 걸어간 순교자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이 무사
안일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은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악과 불행에서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을 당함으로써 이 세상의 죄악과
불행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순교성인들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순교 정신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무사 안일주의에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인용 ; 1877년에 서울의 감옥에 갇혔던
리델 주교는 옥중 생활의 비참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기아로 희생이 된 그들을 보고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해골이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괴로움과 굶주림과 가려움과 곪아
썩어가는 상처는 그들을 볼 수 없을 만큼
흉악한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류홍렬, '한국 천주 교회사' 상권 p.318)

1845년에 입국한 다블뤼(Daveluy)신부는
기해년의 옥중 생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교우들은 이러한 감옥 속에 빽빽이
처넣어져 있었으므로 발을 뻗고 누울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들이 소리를 같이하여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지굿지굿한 옥중의
괴로움에 비하면 고문은 문제도 안된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고름 때문에 멍석은
푹푹 썩어 가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되니,
이로 말미암아 고약한 병이 돌기 시작하여
2,3일내에 죽은 교우도 몇이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형벌은 굶주림과
목마름이었다. 고문하는 곳에서는 용감히
그 신앙을 공표하면서도 이 기갈을 참지 못하여
굴복한 이도 적지 않았다."
(류홍렬, '한국 천주 교회사' 상권 pp.31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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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성 프리바투스(Privatus)
 
축일  9월 20일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와
성 프리바투스(Privatus)는 소아시아 중부
프리지아(Phryg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순교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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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첸시오 마델가리오(Vincent Madelgarius)

성녀 발데트루다(Waldetrudis)

축일  9월 20일 

성 빈첸시오 마델가리우스
(Vincentius Madelgarius)는
성녀 발데트루다(Waldetrudis)의 남편으로서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도 모두
성인 성녀로 공경을 받고 있다.
653년 그의 아내인 성녀 베르틸리아(Bertilia)는
수녀원으로 가고, 그 자신은 베네딕토 회원이
되면서 빈첸시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 외의 그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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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

성 아가피토(Agapitus)

성녀 테오피스테(Theopistes) 

성 테오피스투스(Theopistus)

축일  9월 20일 

불확실한 전설이긴 하지만 이 전설에 따르면
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는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서 플라치다(Placida)란
이름을 가졌던 로마 장군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괄다뇰로에서 사냥을 하던 중
목표물인 사슴 앞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달린 또 다른
수사슴을 보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고
전해온다. 이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에우스타키우스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이 개종으로 인하여 세속적인 운이
점점 멀어져 갔는데, 특히 그의 아내
성녀 테오피스테(Theopistes)와 아들
성 아가피투스(또는 아가피토)와
테오피스투스(Theopistus)가 그를 멀리하였다.
그가 다시 군대에 불려갔다가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화려한 승리
축하식에서 신들에게 제사지내기를
거부함으로써 온 가족이 처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런데 그는 로마 순교록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동서방의 교회는 초대 교회 때부터
늘 그를 공경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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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빌라시오(Evilasius)

성녀 파우스타(Fausta)
 
축일  9월 20일 

성녀 파우스타(Fausta)는 13세의 소녀로서
그녀의 재판관이었던 성 에빌라시우스
(또는 에빌라시오)에 의해 고문을 받았다.
그녀의 용기에 감동을 받은 성 에빌라시우스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고, 폰투스(Pontus)의
키지쿰(Cyzicum)에서 성녀 파우스타와 함께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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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칸디다(Candida)
 
축일  9월 20일 

성녀 칸디다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Carthago)의 동정녀로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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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오도로(Theodore)

성녀 필리파(Philippa)
 
축일  9월 20일 

로마의 군인이었던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와
그의 어머니인 성녀 필리파(Philippa)는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황제 치하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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